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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구 01

캘리포니아, 우리 공군의 시작

1902년 하와이 노동 이민을 시작으로 국권 피탈 이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로 한인 이민 역사가 이어진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에 성공한 한인들이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에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1920년 미국 윌로우스에 대한민국 공군의 모태가 되는 ‘한인 비행사 양성소’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서부의 영웅들

한인들의 아메리카 이민은 1902년 12월 시작된 하와이 노동 이민이 그 시초다. 1905년까지 이뤄진 하와이 이민 규모는 7,500여 명 남짓이었다. 이들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미국 땅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주역이 된다.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등지에서 안창호·박용만 등이 활발히 활동했고 캘리포니아에선 사업에 성공한 김형순·김종림 등이 독립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장인환·전명운 의거’가 있었던 장소로 의미가 크다. 친일파 미국인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를 처단한 이 의거는 이듬해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 서부는 한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독립자금이 조달된 장소로 매우 중요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선 한인 백만장자가 여럿 탄생하는데 이들은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서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해 나간다.

통역관으로 하와이에 온 김형순은 1916년 미국 캘리포니아 중가주 지역 리들리에 정착한다. 그런 뒤 미국인들이 복숭아 잔털에 알레르기가 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조선의 천도복숭아를 모델로 복숭아와 자두를 육종해 대중화에 성공한다. 이후 김형순은 ‘김형제 상회(Kim Brothers, Inc.)’를 통해 미 대륙 전역에 ‘털 없는 복숭아’로 불리는 넥타린(Nectarine)을 유통시켜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이후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지역 독립운동 지도자로 발돋움해 수익금 대부분을 독립 자금과 기관 운영비로 헌납한다. 현재 그의 묘지는 캘리포니아 리들리 시에 남아 있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가 미국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숙주나물로 부를 일군 사실도 흥미롭다. 유 박사는 1922년 숙주나물 통조림 등을 판매하는 라초이회사를 설립해 6년 만에 자산 200만 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워 ‘숙주나물 킹’이란 별명을 얻는다. 이렇게 축적한 부를 가지고 1926년 설립한 회사가 바로 유한양행이다.

‘백미 왕’이라 불리던 김종림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1907년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다 중가주로 이주해 벼농사에 뛰어든다. 그러던 중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전쟁 특수로 인한 때아닌 호황이었다. 당시 그의 연간 수익은 8만 달러 정도였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100만 달러 정도다. 김종림은 쌀농사로 축적한 부를 1920년 2월 새크라멘토 북쪽 윌로우스에 문을 연 ‘한인 비행사 양성소’ 설립을 위해 쾌척한다.

역사 탐구 03 중가주 리들리 시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 김형순과 그의 부인 한덕세 여사의 묘소

“일본의 심장에 폭탄을 투하하라”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3~4시간 차를 몰아가면 윌로우스가 나온다. 예부터 조상들이 쌀농사를 하던 땅이다. 바로 이곳에 우리 공군의 모태가 된 ‘한인 비행사 양성소’ 터가 남아 있다. 이 비행학교는 독립운동가 노백린이 운영을 맡고 김종림이 자금을 댔는데 비행기 구입과 시설비 등으로 김종림이 2만 달러를 기부했고 매달 운영자금 3,000달러를 후원한다. 당시 훈련기 한 대 가격이 3,000~4,000달러 정도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비용을 이 학교에 쏟아부은 셈이다.

한인 비행사 양성소는 사실상 1920년 2~3월부터 가동이 되고 있었는데 7월 5일 공식 개교 행사가 열린다. 200여 명의 인파가 참석한 가운데 이 학교 교장 노백린은 “독립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공군이 일본에 날아가 도쿄를 쑥대밭이 되도록 폭격하자”라고 연설한다.

그러다 그해 10월 불행이 몰아닥친다. 폭풍이었다. 엄청난 비바람이 윌로우스 지역을 강타한다. 추수를 앞둔 벼 70%가 수장되거나 허리가 꺾인다. 김종림은 큰 피해를 입는다. 더군다나 쌀값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종림은 더 이상 비행학교를 지원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야심차게 출발한 한인 비행사 양성소는 개교 1년 반 만에 안타깝게 문을 닫는다. 이렇듯 캘리포니아는 우리 역사의 긍지와 안타까움이 동시에 서려 있는 땅이다.

역사 탐구 02 새크라멘토 윌로우스 비행장 터에 남아 있는 교육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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