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연금홈페이지로 연결 사학연금웹진홈
TP 백일장 2

엄마의 반지

노경숙 시지아이숲유치원 재직

휴대폰 소리가 울린다. 올케언니였다. “아가씨, 재미있는 얘기 해줄게. 어머니한테 갔더니 끼고 있던 금반지와 금팔찌를 우리 며느리 준다고 하네”라고 했다. 나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엄마의 삶의 흔적이 담겨있는 반지를 받는 것은 당연히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엄마는 항상 나는 아랑곳 없이 오빠와 올케언니만 챙기셨다.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힘들게 살아온 엄마에게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감출 수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잘 찾아보지 않는 오빠와 올케언니를 대신해서 엄마에게 필요한 소소함을 채워 주었다. 4남매의 셋째이고 대구에 같이 있다 보니 엄마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내몫이었다. 한때는 엄마와 애틋함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오직 오빠만 존재할 뿐 나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일까. 이번 일을 계기로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엄마는 20여 년을 여러 질병과 수술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응급실과 병원을 전전하며 마음을 졸였다. 대장, 고관절, 심장, 폐, 관절 등 몸 전체가 좋지 않다. 요양병원, 요양원, 집을 수차례 드나들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는 노인들을 보고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어서 그냥 누워 있었다. 요양원도 마찬가지이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 있는 분들도 있다. 어느 날 병원을 가면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조금씩 익숙해졌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분들도 많았다.

요즘 거동이 불편한 엄마는 아파트에서 요양사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한다. 봄에는 된장을 담근다고 친척 언니를 시켜서 많은 양의 메주와 고추 모종을 사오게 했다. 아직도 침대에 누워서 된장 담그고 고추 농사를 짓겠다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엄마를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하면서 파마와 염색을 잊지 않는다. 병원에 갈 때도 모자를 쓰고 간다. ‘하루를 살아도 여자는 꾸며야 된다’라고 한다. 입맛이 없다고 ‘회를 사 와라’. ‘낙지가 먹고 싶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지금도 엄마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내가 엄마를 닮을 것 같아 겁이 난다.

이제 엄마의 달력은 몇 장이 남았을까? 하루가 얼마나 귀할까. 엄마는 삶과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한다. 당신에게 죽음은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을 한다. 그렇지만 통증으로 인해 힘들 때면 죽음을 원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지 나 또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는 엄마를 얼마나 진심을 다해 따뜻하게 대했던가 생각하면 후회되는 일이 많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너무 쉽게 언잖아 하며 무시하기도 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엄마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첫째 아들이 내가 엄마에게 했던 행동을 반복하는 듯해서 놀란 적이 있다. 그제야 엄마에게 한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에 대한 여러 불만은 내 탓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 한 것에 대해 얼마나 보답한 것일까.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초등학교 때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났다. 보통 아이들은 빨간약 정도만 바르면 나을 텐데 내 피부는 그렇지 않다. 자라서 알았지만 켈로이드 피부라 상처가 생기면 살이 부풀어 올랐다. 6개월 정도 별의별 치료를 다 했다. 나중에는 민간요법으로 약초를 빻아서 무릎에 매고 있었다. 엄마는 매일 학교까지 따라와서 약초를 새로 갈아주고 했다. 나의 상처를 본인의 상처같이 아파하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 졸업식 날, 학생 대표로 상을 받았는데, 엄마는 “우리 딸이 상을 받았다”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며 다니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이다. 녹록지 않은 삶의 가운데 잠시 시름을 걷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엄마의 빛이고 희망이었다. 지금도 “너희들을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때는 힘들고 피곤한 줄도 몰랐다”라고 항상 얘기하신다.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과 추억은 헤아릴 수 없는데 왜 그동안 원망과 서운함을 앞세웠는지 가슴이 아프다. 엄마의 하루를 더 귀하게 채워 주어야 한다. 옛일을 아름답고 슬프게 함께 떠올려 보는 일, 감사와 수고를 아끼지 않고 표현해 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얼마 전 읽은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어요.
(중략)
내 삶의 중심에서 담청색
바닷물에 얹힌 심청색 그림자들
커다란 샘물이 솟았지요.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에 묻어둔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다시 예쁜 딸이고 싶다. 엄마의 마음을 내 삶의 담청색으로 다시 그리고 싶다. 엄마가 안 계신다면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엄마의 남은 옷자락만 안고 얼마나 흐느끼고 있을까.

며칠 전 엄마는 또 수술을 했다. 코로나19로 수술은 더 힘들었고 지병으로 먹던 약이 있어서 일주일 뒤에야 간신히 수술을 마쳤다. 퇴원한 엄마에게 가면서 내가 가장 아끼던 반지를 끼고 갔다. 나는 반지를 빼내어 병상에 누운 엄마의 거칠고 생기 없는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반지 위에 엄마의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이벤트보기

이벤트보기

지난호보기

지난호보기

독자의견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