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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 백일장 2

아이들의 백화점, 문방구

정상태 포항공과대학교 재직

세계적으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열풍이 드세다. 잔혹한 내용의 전개보다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한국 전통의 놀이문화가 세계인의 눈에는 정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급기야는 전 세계 플랫폼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세계 곳곳에서 드라마 속 한국 전통놀이의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먼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각종 게임과 세계의 젊은이들이 따라하는 놀이문화로 화제가 되었다. 필리핀의 어느 쇼핑몰 신호등 횡단보도에 설치된 술래잡기 인형의 모습은 지나가는 시민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술래잡기 인형을 보고 드라마 속 참가자들을 따라하는 듯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로 인해 교통신호를 지키고 질서를 위반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니 한류가 전하는 긍정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천진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구슬치기, 술래잡기,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등의 놀이문화가 그들에게 어떤 동질감과 신선함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불량식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친숙하고 추억이 어린 ‘달고나’도 만드는 방법이 가히 열풍이다. 유튜브(Youtube)와 트위터(Twitter)를 비롯한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에서는 달고나 만드는 방법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오픈 마켓 사이트에서는 ‘달고나 키트’가 한국보다 무려 10배나 비싼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 추억의 도시락인 양은 도시락 세트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하니 그저 신기하면서도 한 나라의 문화상품이 가지는 위력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제 정년을 불과 몇 개월 앞둔 나이 든 교직원으로, 또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드라마 속의 한국 전통놀이 문화를 보며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본다. 조개탄을 배급받아 교실 내의 난로에 불을 붙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가져온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오전 수업 4교시가 마치고 나면 모두가 기다리던 점심시간이다. 욕심을 내어 맨 아래 난로에 도시락을 얹혀 놓은 친구는 밥이 까맣게 눋고, 늦게 올려놓은 맨 위층은 미지근하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가진 것도 많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교실은 늘 떠들썩했고 즐겁고 소란스러운 소음이 가득했다. 연필을 깎고 깎아 사용하다 쥐지도 못할 만큼 몽땅 연필이 되면 으레 형과 누나가 버린 볼펜 자루를 꽂아 사용했던 그 시절.

얼마 전, 사무용 비품이 떨어져 구내 문구점에 들러 몇 가지 필기구와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샀다. 얼마 만에 방문한 건지 참으로 기발하고 신기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다. 필요한 물건을 다 챙기고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신기한 듯 물건들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문구점에서 기웃대다 갑자기 추억 어린 소싯적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문구점이라는 멋진 현대식 표현보다는 문방구라는 다소 촌스럽지만, 추억이 서린 이름으로 멋지게 다가온다. 학교를 파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달려가던 문방구의 추억, 그곳에는 수많은 학용품인 문구와 수업 준비물, 그리고 ‘또 뽑기’ 게임, 전자오락기가 놓여 있었다. 요즘 말로 없는 것이 없는 화려한 백화점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백화점.

학교가 파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달려간 문방구엔 너무나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학교 준비물과 색종이 등 문구 용품은 말할 것도 없고, 녹슨 놋그릇을 쓱싹 닦으면 반짝 반짝 광나는 광약은 백화점의 생활용품 매장이었다. ‘쫀드기’나 엿, ‘달고나’를 조심스레 완성하면 다시 한번 더 만들어 주는 그곳은 식품 매장이었고, 고무줄과 구슬, 딱지와 팽이 그리고 물총과 주사위 게임놀이 판매대는 스포츠 용품 매장과 같았다. 문방구점 아저씨는 단골이던 우리들 이름까지 기억하며, 문방구 앞을 늦게 지나쳐 학교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큰 소리로 혼쭐을 내시던 그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정감 넘치지만 늘 부족하고 아쉬운 추억의 문방구에는 지금의 문구만 진열하고 판매하는 문구점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부족했을까? 초라했기에 가질 수가 없었기에, 가지고 싶었기에, 그 욕망이 의식 내내 잠재해 있다가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과 지금 21세기에 서로 만난 것이 아닐까? 이렇듯 한국의 드라마가 불러온 <오징어 게임>의 열풍이 내부적으로는 아련한 소싯적 추억을 불러오며 입가에 옅게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퍼진 이 드라마의 가진 힘은 그 단순함과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추억으로 지금과 같은 증후군(Syndrome)을 만들었다. 한국적 토양에서 비롯된 아련한 추억의 밑바탕에 있는 전통놀이와 문화가 현재 세계의 시장을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60년, 70년 시대의 감성이 2021년 까다롭고 개성이 강하기로 유명한 세계의 젊은이들의 유행(Trend)에 부합한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흔히들 한국의 1970~80년대를 ‘7080’이라 부르며 문화가 특히나 번성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세대들에게 이러한 현상을 보며 다시 돌이켜 살펴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숱한 놀이문화와 초라했지만 소중했던 문방구의 기억도 돌아보며, 지금 다 지나고 보니 참 멋있는 시절을 살고 있었구나, 또 그렇게 한 시절을 지나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훈장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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