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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문제를 풀다

글. 조하식(한광고등학교 퇴임)

정년퇴임을 하고서도 나에겐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렵사리 박사과정에 합격한 뒤 여러 가지 여건상 미뤄두었던 미완의 과제였다. 일단 올 한 해는 푹 쉬면서 건강부터 챙기라는 아내의 충고마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훌쩍 이순을 넘긴 나이에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뒤로한 채 당차게 착수한 늦깎이의 향학열.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공은 내게 괄목할 만한 집중력을 선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꼭 해내리라는 다짐만은 하늘을 찔렀으니까.
하지만 첫 학기부터 만만찮은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느닷없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질문도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각종 자료를 찾는 방법조차 극히 서툰 상황. 처음 맞닥뜨리는 국면인지라 담당 교수나 교학과에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다가온 새내기의 발제 순서. 주어진 논제를 정리하여 논의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미묘한 문제 제기에 응대하는 과정이 수월치 않은 건 너무나 당연했다. 예리하게 파고드는 질의에 무진 애를 먹었으나 그런대로 무탈하게 넘어간 기억이 여태껏 뇌리에 생생하다.
첫째 관문은 영어시험. 어려운 어휘들을 익히면서 복잡한 구문을 해석하는 과업이 주어졌다. 차례차례 암기의 파고를 넘으려면 무한 반복하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있을까. 노트에 몇 번이고 빼곡히 기록하며 행간의 의미를 숙지한 끝에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둘째 관문은 종합시험. 글자 그대로 전공 학문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두루 분석하여 아우르는 필답고사였다. 포괄적인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작업은 실로 난해한 영역이어서 극도로 긴장이 되었으나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가까스로 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셋째 관문은 프로포절(Proposal). 즉 논문계획서 공개발표 자료로써 논문 제목을 정하고 예상 목차에 따른 간략한 내용 전개상 얼개와 연구방법론에 의거해 조사한 선행참고문헌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학위논문에 관한 예비심사를 받는 단계에 해당한다.
남은 관문은 두 번의 심사 절차. 이제 발표한 논제를 하나하나 충실히 채워야 하는 난제가 바로 코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다소 거창한 듯한 서론은 전체를 품는 청사진이기에 수정에 보정을 거듭해야 했다. 차라리 본론의 각 대항목을 써 내려가는 작업이 쉬울 정도. 다행히 학기마다 소논문을 중심으로 미리 구도를 짜 놓았기에 예정대로 진도를 뺄 수 있었다.
인문학이라는 분야를 놓고 벌이는 고수들의 칼질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표제만 해도 삼세번을 넘게 고치기를 되풀이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연구자의 피와 살을 녹여 탈고한 원고는 가차 없이 잘려나가고, 급기야는 거의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오죽 심했으면 치열한 문답이 오간 중간심사를 조건부로 통과한 뒤 정신은 물론 육체적 몸살을 동시에 앓았으랴.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힘은 논문작성법을 수강할 때 새겨들은 한마디. 가장 우수한 논문은 심판관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한눈에 꿰뚫어 최단 시일에 인준을 받아내는 그것이었다. 보강에 보완을 거쳐 철학박사학위 청구논문의 맥락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친 건 그 때문이었다.
드디어 최종 심사일. 의관을 정제하고 마주한 심사위원분들의 표정은 사뭇 근엄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심의한 결과는 축복의 악수였다. 앞으로 학계(신학과 문학의 접목)에 이바지해 달라는 당부는 무겁고도 간결했다. 기실 법적 노인의 범주에 접어든 나이에 무슨 대단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으랴마는 이는 정녕 개인적으로는 뜻 깊은 성취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지인들로부터 듬뿍 축하 세례를 받으며 내가 디딘 다음 행보는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3년 편입. 웬 뜬금없는 경우냐 갸우뚱하지 말고 그간 소진한 간학문적 자양분을 재충전한 뒤, ‘지정의적 글쓰기의 체계화’를 위한 통섭의 일환이라고 곱게 보아주면 고맙고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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