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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집시

글. 황선옥(대구중앙중학교 퇴임)

낯선 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즐거움이며 슬픔이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이 나를 맞이할 때 슬픔은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채 새로운 음식을 먹고 거리를 배회하며 동화할 수 없는 그들의 삶 속으로 서서히 발을 들이민다.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이정표에 다다를 때마다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진정 내 길로 가고 있는지, 파도처럼 떠밀려 다니는지 종잡을 수 없다. 마음은 허허롭고 정신은 말라 갔다. 낯선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한다.
언젠가 우연히 <티베트에서의 7년>, <쿤둔> 같은 영화를 보고 달라이 라마에 빠졌다. 달라이 라마란 뜻은 원래 몽골어로 ‘큰 바다’를 뜻하는 ‘달라이’, 티베트어로 ‘영적인 스승’을 뜻하는 ‘라마’가 합쳐진 말이다.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덕의 소유자인 스승’을 뜻한다.
티베트 사람은 고승이 죽으면 환생한다고 믿는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이 입적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예시(豫示)하였다. 그 내용을 가지고 고승들은 후대 달라이 라마가 될 아이를 찾게 된다. 전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기 전에 사용하던 염주와 유품들을 섞어 놓고 물건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최종 결정은 라싸의 조캉사원에서 행하는 의식을 통하여 선택된다. 이렇게 선택된 아이는 달라이 라마로서의 자질을 갖출 교육을 받고 열여덟 살이 되면 정식으로 달라이 라마에 즉위한다. 이런 의식(儀式)과 정신에 담겨진 일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초자연적인 일들이 마냥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가초(Tenzin Gyatso)는 중국 공산당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웠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정신적인 지주이며, 198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초청받아 수많은 강연을 한다.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중국의 눈치를 보며 그의 방한을 수락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언젠가 그가 한국에 오기를 기대해 본다.
왕궁에서의 생활과 책으로만 공부한 그가 인간의 깊은 사랑과 행복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이해하고 우리에게 종교적 설파를 할 수 있을까? 그의 많은 글에 나타난 사상은 나에게 환생을 믿게 했다. 그 후 티베트는 내 발목을 잡았고, 내 삶에서 간과해버린 무엇을 찾아 나서게 했다.
라싸에서 누추한 차림새로 구걸하는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나의 욕망은 발가벗겨졌다. 장체의 하늘에서는 천체망원경 없이도 별을 잡을 듯이 가깝게 우주를 보았다. 조캉사원에서 그들과 어울려 오체투지를 하고 마니차를 돌리며 마냥 걸었다. 어디에서도 떼어내지 못하던 나의 욕망과 이기심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크리스나뮤티의 고향을 찾아 인도로 떠났다. 갠지스 강(Ganges River)의 푸자(Pooja)의식에서, 바나라시의 주검을 태우는 불꽃에서, 뭄바이의 화려함 속에서도 슬픈 자아를 버리지 못한다. 푸리(인도 스낵)를 물고 무거운 배낭을 흔들어대면서 인도의 거리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듯이 삶의 의욕은 새록새록 더 진하게 번져가고, 나를 갉아 먹던 아픔과 슬픔은 희미해져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배낭을 싸면서 커다란 기쁨과 함께 삶의 무게가 줄어든 것을 느낀다. 폴 서루는 “여행은 삶의 고독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한 적 있다. 그렇지만 되풀이되는 일상생활에서는 삶의 고독을 즐기기는커녕 오늘 일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여행은 현실의 도피였다가 차츰 마음의 안식처로 되어 간다. ‘어디로 가는가?’는 단지 강을 건너면서 던지는 화두인지 모른다. 강을 건너려고만 할 뿐, 바다를 보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가보다는 어떻게 갈 것인가에 가치를 두었더라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삶의 모습에 가깝게 다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살아가는 방식이나 하는 일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나의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의 길에서 빙빙 돌며 그 속에서 빠져 나오려 애쓸수록 깊숙이 빠져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을 비로소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삶의 고독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은 세상에서 잊어버린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버리기 위해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치도록 어깨에 메고 간 배낭의 무게와 같은 삶의 고뇌의 무게를 버리고 올 줄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타인의 삶을 배워온다. 버린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마주하면서 먼 곳에서 얻어 온 삶을 따뜻하게 보듬고 바닷가의 돌처럼 동글동글 굴리며 몽돌처럼 가꾸어 간다.
하나둘 나이를 먹으면서 삶의 지표도 변했고,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행복의 기준도 달라졌다. 또 여행의 가치도 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흐르는 강물 따라 다시 미지의 곳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린다. 저 세상 어디에선가 낯선 풍경과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내 마음은 집시가 되어 머나먼 곳으로 달려가기 위해 공항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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