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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과 급행버스

글. 김진성(명지고등학교 퇴임)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입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 대학국어라는 필수 과목이 있었지요. 그중 어떤 글의 제목인지, 아님 그 당시 국문학자이셨던 담당 선생님의 수업 중 소개였는지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수업 중에 나온 에피소드였답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겠지만 그 당시 아침 출근시간의 만원버스는 아주 악명이 높았지요.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는 장소에 따라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다가, 또 앞으로 우루루 달려가고, 그러다가 어찌어찌 못 타게 되면 회사든 학교든 지각하게 되었죠. 참 애환이 많던 1970~1980년대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질서와 양보를 외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고, 거기서 소위 양반의 체면을 차리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메스컴이나 일반 대중들이 흔히 말하길 “한국인은 미개해서 본래부터 질서의식이 없으니 이런 것들도 교육 및 홍보를 잘해야 한다. 그래서 정류장만이 아니라 모든 공공장소에서 줄을 서는 민주시민의 질서의식을 함양시켜야 한다”고 떠들었던 시대였죠.
외국, 특히 미국에 가보니 다르더라. 새벽에 길을 걷고 있었는데 횡단보도에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붉은 신호등이 들어오자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차들이 모두 기다리더라. 이걸 보더라도 확실히 선진국은 선진국이더라. 하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수업시간에 나온 얘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를 중시한다던 그 공자님도 그 당시 한국의 서울 아침 만원버스를 타려면 신발 들고 뛸 수밖에 없을 거다. 저 버스를 놓치면 상관한테 불성실하다고 한 소리 들을 것이고, 저 버스를 놓치면 1교시에 지각, 점수에 지대한 영향이 오는데 어느 누가 양반걸음으로 뭉그적거리며 걸을까.
발만 디딜 수 있으면 버스에 매달렸을 것이다. 능숙한 버스 기사가 버스를 반대편으로 기울여 공간을 만들면 매달린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안내양이 문을 닫는다. 그리곤 버스가 다음 정거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그 당시 흔한 풍경이었다.
그때 선생님의 말씀, 한국인도 선진국 못지않게 질서를 잘 지킨다. 예를 들어 이미 표가 확보된 극장이나 고속버스를 탈 때 아무도 뛰지 않고 남을 밀칠 필요가 없으니 소위 공자님 식 예의를 차리고 느긋하게 입장하면 된다. 그러니 한국인이 질서의식이 없거나 줄을 잘 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환경이 형성되어야, 즉 순서를 기다리면 나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어야 예의를 지키지, 남을 밀어내지 않으면 내가 망하는데 어느 누가 양보를 하겠느냐가 그 수업의 결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PS.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해외여행이 흔해지자 너도 나도 해외로 갔지요. 저도 파리를 세 번(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첫 번째는 아내와 여행으로 2주간 머물렀고, 2번째는 장인어른 팔순 기념여행으로, 세 번째는 큰누님 칠순 여행으로)이나 갔었는데 처음 갔을 때 아주 놀랐죠.
파리지엥들이 도대체 신호를 안 지켜요. 빨간 불인데 차만 없으면 건너갑니다. 나와 아내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건너가는데 멀뚱멀뚱 둘만 서 있다가 ‘에이 건너가자’하고 적응했죠. 나중에 기회가 있어 파리인에게 물었더니, “뭐 하러 시간 낭비하느냐, 차 없으면 건너가면 되지” 가 답이었죠. 세 번째 갔던 것이 2020년 3월이었으니, 지금도 그러겠죠?
2023년 1월 19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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