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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이행림 / 사진. 김정호
꽃을 사랑하는 영어 선생님, 손순옥 선생님
벚꽃 만개한 어느 월요일 오후, 대구 혜화여자고등학교 가사실에서 꽃꽂이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강생들 앞에서 꽃꽂이 시범을 보이고 있는 이는 이곳 혜화여고에서 25년간 영어 교사로 근무하다 지난해 2월 정년퇴임한 손순옥 선생님. 퇴임하면 학교를 떠나기 마련인데, 그녀는 어떻게 학교에 남게 된 것일까? 그것도 전공과목인 영어가 아니라 꽃꽂이 교실에 말이다.
“제가 꽃꽂이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가정 선생님이신가?’ 하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영어 교과를 담당했다는 걸 아신 후엔 ‘영어 선생님이 왜 꽃꽂이를?’ 하며 궁금해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사실 영어 교사가 되기 전부터 꽃꽂이를 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꽃꽂이 경력이 교사 경력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 경력을 살려 재직 당시 영어를 가르치면서 꽃꽂이 지도도 해나갔죠. 먼저 점촌중학교에서 근무할 때(1982년~1994년) 퇴근 후 일주일에 한번 이웃학교 문경여중 가사실에서 여선생님들 대상으로 꽃꽂이를 가르쳤고요.
혜화여고에 부임해서는 교내 꽃꽂이 동아리 ‘애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1998년도 4월에 ‘평생교육 어머니 꽃꽂이 교실’이 생긴 후부터는 학부모님들을 지도하게 되었어요. 솔직히 학생 같은 경우는 가르치기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꽃꽂이를 하려면 재료를 사야 하는데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또 학생들은 공부가 우선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힘들죠. 근데 학부모님들은 달랐어요. 시간적, 경제적 제약이 덜했고, 무엇보다 배움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어요. 또 굉장히 잘들 하시고요. 차츰 수강생도 늘고, 초창기 멤버 몇몇은 아직도 수업을 듣고 있을 정도로 수업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교장 선생님께서도 우리 꽃꽂이반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지원도 아끼지 않으셨고요. 그리고 저에게 퇴임 후에도 평생교육 꽃꽂이반을 계속 맡아달라는 바람을 전하셨죠. 저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오늘처럼 수업이 있는 날, 42명 회원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생각하며 이곳으로 향할 때만큼 행복한 때가 없거든요.”
꽃과 함께 하는 삶, 그 꿈을 이루기까지
꽃꽂이반 회원들을 만나러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손순옥 선생님. 그녀의 꽃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종교가 기독교라 교회에 다니는데, 교회 제단에 보면 꽃꽂이가 되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걸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게 시작이 아니었나 싶어요.”
교회 제단 꽃장식을 보며 꽃꽂이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선생님은 한때 미대 진학을 희망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 7남매 중 넷째였던 그녀에게 미술 공부는 꿈일 수밖에 없었다.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7남매를 가르치다 보니 돈이 안 되는 거예요. 더구나 그때는 큰언니가 서울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있던때라 저까지 예능을 할 수가 없었어요.”
마음은 미술이었지만 가정 형편상 결국 영어를 전공하게 된 선생님은 졸업 후 영어 교사가 되어서야 미대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단다.
“교직 생활과 겸해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들어가 미술교육을 전공했어요.
뒤늦게나마 미술을 전공한 데에는 학문적으로 꽃꽂이를 발전시킬만한 뭔가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어요.”
영어 선생님일 때도, 미술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일 때도 꽃꽂이를 떠나있지 않았던 손순옥 선생님. 그녀는 그때를 꽃을 사랑하기에 감당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정말 힘든 시간이었어요. 수업은 수업대로 하면서 꽃꽂이 지도도 하고 대학원 공부도 하려니까 시간에 쫓기게 되는 거예요. 쉴 틈이 없었죠.
고3 담임 할 때도, 교무부장 할 때도 꽃꽂이를 했거든요. 교무부장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닌데, 그 와중에도 꽃꽂이를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아하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니까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사랑하는 꽃, 그리고 꽃꽂이반
꽃을 사랑하는 손순옥 선생님은 수십 년간 교회에서 꽃꽂이 봉사를 하고, 외국인에게 무료로 꽃꽂이를 가르치는가 하면, 퇴직 후에는 서라벌 꽃예술 협회 회장단 활동과 함께 퇴직 전과 다름없이 평생교육 꽃꽂이반을 이끌며 꽃꽂이 지도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다. 꽃꽂이 지도는 ‘꽃꽂이를 가르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업에 필요한 재료를 미리 챙기는 것부터가 손순옥 선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수요일에 출석 인원을 받아서 목요일에 꽃시장에 가요. 물건 같으면 뒀다가 줄 수 있지만 꽃은 시들잖아요, 그래서 출석하는 인원만큼만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거죠. 재료 준비에도 꽤 공이 들어가는데 지난주에 노란색 꽃을 했다고 하면 이번 주엔 다른 색 꽃, 다른 색 소재를 찾아 발품을 팔아요. 오랜 시간 했는데 안 써본 꽃이 있겠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장미 종류만 해도 250가지가 넘거든요.” 이야기를 술술 이어가던 그녀에게 수백 종의 꽃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꽃을 묻자 잠시 주춤한다. 하나만 꼽기 힘드신 모양이었다.
“저는 이게 좋다, 저게 좋다, 그런 거 없이 거의 모든 꽃을 다 좋아해요. 꽃마다 나름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오늘 제 스카프 색깔과 비슷한 스카비오사를 얘기하고 싶네요. 하늘하늘하며 자기 색깔을 내는 꽃인데, 연보랏빛을 띠고 있죠.”
모든 꽃을 좋아해 거의 모든 꽃을 꽃꽂이의 재료로 삼고 있는 손순옥 선생님. 그녀는 꽃꽂이를 통해 인생을 본다고도 말한다.
“꽃꽂이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굉장히 힐링이 돼요. 그리고 꽃꽂이를 하고 있노라면 인생이 보여요. 처음 꽃을 꽂으면 그 모습이 낭랑 18세예요. 하룻밤 자면 20대, 또 하룻밤 자고 나면 30대, 꽃꽂이를 해놓고 2, 3일 뒤에 보면 너무 예쁜 거예요. 사람도 2,30대가 예쁘잖아요. 그 다음에는 더 피고, 또 그 다음에는 더 피고…, 그렇게 꽃 피는 걸 보고 있으면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물론 계속 피어 있는 건 아니죠. 일주일쯤 지나면 시들기 시작하죠. 그 모습에서는 또 인생을 배워요. 우리 인간도 70이 되고, 80이 되면 가만있어도 시들고 쓰러지잖아요. 저는 가화(假花)를 싫어해요. 생명이 짧아도 생화가 좋아요. 어쩌면 생명이 짧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죠. 봄에만 잠깐 볼 수 있는 벚꽃처럼요.”
손순옥 선생님은 꽃으로 만든 아름다운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수차례 꽃 전시회를 가졌다. 꽃 전시회는 그녀의 바람대로 많은 이의 관심 속에 성황을 이루었고, 플레르(Fleur)라는 플라워잡지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시했던 작품이 학생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때였단다.
“전시회는 해마다 하고 있어요. 전시회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꽃꽂이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꽃으로 ‘수능 대박’이라는 말을 만들어 놓은 걸 보고, 고3 학생들이 감격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한 일이에요. 고3 담임 선생님들도 같은 반응이었고요. 저도 고3 담임을 해봤지만 아이들하고 마음이 똑같거든요.
그게 2, 3년 전 일인데 그때 이후로 매년 고3 학생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꽃으로 수능 대박을 써서 전시하고 있어요.”
손순옥 선생님은 전시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쁨으로 꽃꽂이반 회원들의 실력이 날로 향상되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매년 전시회 때마다 회원들의 실력이 향상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놀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하죠. 그런 기분이 지금껏 혜화여고 꽃꽂이반을 이끌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 준 것 같아요.”
그녀는 전시회 기간이 아닌 때에도 혜화여고 곳곳을 꽃으로 수놓고 있다. 학교 중앙현관과 교무실, 그리고 교장실에서 만난 꽃장식이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 작품들을 보며 대구에서 가장 향기 나는 곳을 꼽으라면 대구혜화여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향기 나는 삶’을 살고파
“저는 지금 무척이나 행복해요. 퇴직 전에는 항상 시간에 쫓겼었는데, 이제는 꽃도 나무도 여유있게 봐요. 지금 같은 봄날에 나뭇가지를 보면 공부가 많이 돼요. 처음 꽃꽂이를 배울 때는 특히 더 그랬죠. 길을 가다 나뭇가지를 보면서 이 가지는 치고, 저 가지는 살리면 되겠다, 그런 식으로 혼자 공부했어요. 가지치기는 2, 3, 4월 이때가 좋아요. 5, 6월 되면 잎이 막 나오면서 가지가 그 뒤로 다 숨어버리거든요. 그러면 그때는 또 잎사귀를 이용한 꽃꽂이를 하지만 전 가지치기 좋은 2, 3월이 더 좋더라고요.” 그녀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배움을 주는 꽃과 나무. 그래서일까? 그녀는 퇴직 후 달라진 점으로 더 잦아진 등산을 꼽는다. “퇴직하고 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잖아요. 덕분에 등산을 자주 해요. 집 가까이에 산이 있는데 그 산 이름이 ‘앞산’이에요. 팔공산도 많이 가지만 앞산은 정말 밥 먹듯이 가죠. 요새 보니까 진달래가 많이 피었더라고요. 매년 피는 꽃인데도 볼수록 예쁘고 가슴이 설레요.”
꽃만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는 손순옥 선생님, 그녀는 앞으로도 꽃을 사랑하며 꽃과 함께하는 삶을 살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의 삶에서 꽃향기가 끊이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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