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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양지예 / 사진. 김정호
팬플루티스트가 되다
올해 일흔넷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꼿꼿하고 단단한 체구의 성대현 선생님은 만나자마자 멋들어진 팬플룻 연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단단한 나무 소리 같기도 하고 가벼운 갈대 소리 같기도 한 팬플룻 연주는 단숨에 귀를 사로잡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소리가 자연을 닮았어요. 저도 이 소리에 매료되어 팬플룻을 독학했죠. 연주하기 결코 쉬운 악기는 아닌데, 슬럼프에 빠졌다가도 소리에 끌려 다시 악기를 집어 들곤 했던 것 같아요.” 팬플룻은 성대현 선생님에게 제2의 인생을 선물해준 고마운 존재다. 또한 가장 힘든 시절, 마음을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었던 것도 팬플룻 때문이었다. 16년 전 아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힘들었을 때 팬플룻을 배우면서 조금이나마 슬픔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떠나고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사람들이 여행이라도 다니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동생이 쥐여 준 팬플룻을 가져갔어요. 동생이 대한민국에 팬플룻을 처음 소개한 성방현이라는 음악가인데, 동생이 연주하는 걸 어깨너머로 들으면서 저도 종종 불었거든요. 독학으로 연습했던 터라 잘 불지는 못하고 몇곡 겨우 연주하는 정도였는데 여행 가서 불었더니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본격적으로 팬플룻을 배워보자고 생각했죠.”
당시 50대 후반이던 선생님은 방학 때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혼자 배낭을 둘러메고 동남아, 유럽, 인도, 남미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그 여행에 항상 팬플룻이 함께 했다. 그때 인연이 지금의 선생님을 팬플루티스트로 만든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선생의 도전정신과 용기가 아름답다.
마음을 위로하다
성대현 선생님이 팬플룻에 더욱 심취하게 된 것은 2008년 8월 퇴직하고 난 이후다. 우연한 기회에 한 전원카페에서 진행하는 음악회에서 토요일마다 연주하게 되면서 퇴직 후 계획했던 세계여행도 포기하고 하루에 6~8시간가량 연습에 매진하게 된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해 봤지만 무대에 서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떨리기도하고 어쩌다 무대에서 실수 한 번 하면 그게 마음에 남아서 일주일간 죽어라 연습했어요. 그렇게 6년을 보냈습니다.” 6년간 갈고닦은 실력은 카페를 찾는 많은 예인(藝人)들의 눈에 띄었고, 다양한 행사에서 연주해 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면서 선생의 봉사활동이 시작됐다. 이후 시낭송회, 실버음악회를 비롯해 여러 단체나 지자체의 각종 축제와 행사에 초청받게 되었고 예술단원으로 여러 공연에서 다른 연주자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어엿한 프로 연주자가 됐지만 봉사활동만은 꾸준히 하고 있다.
서울시 시민청 예술가로 시청에서 한 달에 두세번 점심시간에 연주를 하기도 하고, 청계천 예술가로 거리공연도 하면서 시민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학교, 요양병원, 지역아동센터,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연주하면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현재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소프라노 황수정 씨와 듀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벌써 9년째인데요, 1년에 120~150번 정도는 무대에 서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소프라노와 팬플루티스트가 듀오로 활동하는 팀이 없어서 그런지 다양한 행사에 많이 초대받고 있어요. 뜻하지 않게 프로 팬플루티스트가 됐지만 노원구청이나 여러 단체에서 지역봉사를 꾸준히 하며 의미 있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 내일은 대전, 모레는 대구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는 곳이 없다는 그는 자신이 세계 곳곳에서 팬플룻을 연주하며 마음을 치유 받았던 것처럼 아름다운 음악으로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체육인에서 음악인으로, 영광을 잇다
악기에 심취해 있어 음악교사 출신인가 싶었지만, 사실 성대현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기계체조를 했고, 36년간 체육교사로 재직한 체육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기계체조 도(道) 대표선수로 활동했고, 경희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해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이후 체육교사로 재직한 그는 더욱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게 된다. 1984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개장할 때 개장기념 행사에서 ‘고싸움’이라는 매스게임(많은 사람이 맨손이나 기구를 이용해 집단으로 행하는 체조 및 율동)을 지휘해 한동안 방송사 애국가 장면에 등장하기도 했고, 1986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는 ‘영고’라는 주제의 매스게임으로 학생들은 대통령상을, 그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88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는 ‘등불에 안녕’이라는 주제로 1,000명의 학생이 등불을 들고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인 강강술래 장단에 맞춰 대규모 행진을 했는데, 그 역사적인 행사를 지도한 것도 바로 성대현 선생님이다.
“세계인의 축제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성공적으로 공연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죠. 개막식과 폐막식 행사를 모두 함께했으니, 86아시안게임의 문을 열고, 88올림픽의 문을 닫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운동한 사람으로서, 체육교사로서, 정말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체육인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커다란 획을 그은 그는 이제 팬플루티스트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다며 앞으로의 활약을 다짐했다.
음악으로 사랑을 전하다
체육교사 시절 수많은 학생을 연습시켜 올림픽 무대에 세웠던 뛰어난 지도실력은 팬플루티스트가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소리조차 내기 어렵다는 팬플룻을 지도해 6개월 만에 초등학생들을 발표회 무대에 세운 것이다.
“사실 이것도 봉사의 의미로 하게 된 거예요. 작년에 경기도 설악면에 있는 장락분교 선생님이 제 연주를 듣고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만류하다가 나도 교사였는데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는 것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서 수락했죠. 정말 열심히 가르쳤어요.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하기로 했는데, 제가 자진해서 일주일에 3~4번은 간 것 같아요.”가고 오는 데만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에 몇 번씩 오가면서 전교생 11명을 6개월간 지도해 발표회를 열었던 기억은 그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당시 아이들과 연습했던 장면이 담긴 영상과 발표회 사진 등을 보여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대현 선생님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여러 곳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따로 레슨을 하지는 않지만 이처럼 간혹 봉사의 의미로 지도를 하곤 한다. 몇 년 전에는 의정부 지적장애인복지관에서 지적장애인을 지도하기도 했다. 당시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지적 수준이 5~6살밖에 안 되는 지적장애인들을 6개월간 지도했는데 아쉽게도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바람 소리밖에 나지 않던 팬플룻에서 소리가 나자 뛸 듯이 기뻐하며 환하게 웃음 짓던 학생들의 모습은 아직도 선생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제 일상은 팬플룻을 중심으로 돌아가요. 지금도 팬플룻을 조금 더 잘 연주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공연이 없는 날이면 하루에 6시간씩 연습합니다. 꿈이 있다면 내년에 독주회를 여는 거예요. 듀오로 활동한 지 5주년이 되던 해에 독주회를 열었는데 내년에 10주년 기념으로 또 한 번 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혼자서도 콘서트를 해보는 것이 꿈입니다.” 팬플룻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고 있었다. 주변의 어렵고 외로운 이웃들을 위해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하고 있는 성대현 선생님이야말로 사랑의 전령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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