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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돋보기
글. 강성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베스트힐스병원 원장)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고 싶다. 상대에게 좋은 배우자이고 싶고, 자녀에게 좋은 부모이길 원한다.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이고 싶고,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는 좋은 친구이고 싶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나 자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동창들이랑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여행에 혼자만 불참한 적은 없었는지, 아이 학원비는 어떻게든 마련하면서, 정작 나를 위한 강좌는 돈을 핑계로 번번이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 대부분은(필자도 포함해서) 걷기도 전부터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로 평생을 산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는 넘어져서 울다가도 엄마, 아빠가 치는 손뼉과 웃음에 다시 또 일어난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기뻐하고 안아주는 순간들이, 학교 다니면서는 선생님이 성적이 올랐다거나 말을 잘 듣는다고 칭찬해주는 한 마디가 우리의 행동과 선택들을 결정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칭찬과 애정을 갈망한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꾸중과 비난이 듣기 싫어 억지로 야근을 하고, 연애때는 그녀에게 사랑받기 위해 부지런히 데이트 코스를 연구하고, 취향 아닌 영화를 예매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자신이 아닌 남의 행복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면서, 정작 자신이 아닌 남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애를 쓸까? 바로 ‘인정욕구’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원시 시대부터 모든 인간에게 자연스런 욕구였고, 생존에 필수적인 욕망이었다.
돌도끼 하나만 가지고 자연에서 맹수와 함께 살아가던 시대에는 ‘남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 것’, 즉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나를 필요하다고 집단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줄 때 비로소 생존이 보장될 수 있었다. 이렇듯 인정에 대한 욕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다. 하지만 다른 모든 걸 무시하고 오직 성적인 욕구만 만족시키려 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처럼, 인정에 대한 욕구에 온통 끌려다니는 삶 또한 불행해지기 쉽다. 생존은 행복에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인간에게 젊음을 뺏어가는 대신 지혜를 나누어준다. 노인 환자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평생 다른 사람만 만족시키려다 자신은 뒷전이었단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마음먹고 떠난 일주일간의 여행에서 처음 며칠은 동반자가 꼭 가고 싶단 관광지에도 따라가고, 내 취향 아닌 식당도 친구가 스크랩해 온 맛집이란 이유로 따라간다. 하지만 오늘을 끝으로 내일이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정작 자기가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슴 설렜던 상상은 무엇이었는지, 그냥 돌아가면 후회할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내어놓을 수 있고, 여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슬프게도 실제로 찾아온다),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역할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