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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양지예 / 사진. 김정호
작명의 길에 들어서다
김재식 선생님은 충남 당진에서 가장 큰 학교인 호서고등학교 행정실에서 30여 년간 근무하다 지난 2007년 퇴직했다. 퇴직한 후 활로를 모색하던 중 우연히 명리학에 입문하게 된 선생은 2018년 8월 말까지 12년간을 명리학과 성명학, 관상학, 한문경전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소일거리로 생각하고 명리학을 배우게 됐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을 오가면서 강의를 들었죠. 역학, 사주, 관상, 작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미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명리학은 사주(四柱)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예단하여 좋은 것은 내 것이 되게 하고, 나쁜 것은 피해가는 피흉취길(避凶就吉)의 방도를 찾고자 하는 심오한 학문입니다.” 그는 한국동양사상연구회에서 사주학 정규과정을 마치고 월간 역학교육원에서 마의상법, 미래사주학, 주역, 자미두수 전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한국전통과학아카데미에서 매화역수, 수상학, 성명학을 배웠다. 이후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에서 육효학을,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명리학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역학사, 성명학상담사, 동양철학상담사, 명리학교육강사 자격 및 인증서를 취득했다.
현재 그는 10년째 작명원을 열고 이름 짓는 일로 2막 인생을 살고 있다. 선생을 찾아오는 이들 대부분은 신생아의 이름을 지으려는 부모들이지만, 개명을 하고자 찾아오는 사람도 꽤 많다. 개명은 대부분 이혼이나 사업 실패 등을 경험한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개명을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 창세기 17장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이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불리고 후대에까지 한 사람의 삶을 대표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그는 이러한 생각으로 작명가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발음오행의 정론과 수리이론의 근거를 밝히다
김재식 선생님이 취미로 시작한 성명학에 이토록 깊이 심취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계기가 있었다. 바로 작명에 적용하는 오행 중 가장 중요한 발음오행에서 ‘水, 土’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이다. “우리나라 7~80%의 작명가들이 아직까지도 발음오행의 水, 土를 바꿔서 작명하고 있습니다. 다수설이라는 이유로 ‘ㅁ, ㅂ, ㅍ’은 水, ‘ㅇ, ㅎ’은 土라고 믿고 쓰고 있지만, ‘ㅁ, ㅂ, ㅍ’은 土, ‘ㅇ, ㅎ’은 水로 해례본이 정론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훈민정음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서기 1446년 세종28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면서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밝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를 펴냈다.
그러나 연산군이 ‘언문금지령’을 내리는 한글탄압을 자행해 한글 창제에 관한 자료가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후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학자들이 중국문헌을 참고하여 1750년에 ‘훈민정음운해’를 펴내게 된다. 훗날 훈민정음운해가 한글지에 연재되었고, 1938년 조선어학회에서 이 연재물을 단행본으로 꾸며 출간함으로써, 작명가들이 운해본을 정론으로 알고 인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지난 1940년 경북 안동 이한걸의 집에서 해례본이 발견되었고, 한글자음의 오행이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적용해오던 것을 뒤집을 수 없어 아직까지도 운해본에 따라 작명을 하는 이들이 많다.
“현재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국보70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국립국어원에 서면 질의하여 서면 답변서를 접수한 바, 해례본이 정론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선생은 사실 확인 후, 오류를 바로 잡을 작명책을 직접 집필하기 시작하여 2015년에 혜당식 작명 十법[작명·해명 실무대전]초판을 출간하였고, 이후 2017년, 친일의 잔재로 매도되고 있는 수리작명의 수리(數理)이론이 주역의 ‘하도낙서’와 송나라 때 채침의 81수 이론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수리성명의 창시자인 구마사키 겐오우의 수리이론과 대만의 성명학자 오명수의 ‘81수 영동가결’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어 한·중(대만)·일 3국의 수리이론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음양, 오행, 사격수리의 완결을 도모하여 개정증보판을 출간하였다. 국립국어원의 질의 답변서 자료까지 첨부하여 책을 낸 이유는 아직도 오류설인 운해본에 따라 작명하고 있는 전국의 많은 작명가에게 올바른 작명이론을 알리겠다는 생각에서다.
책이 출판된 후, 십 수 년 간 운해본에 따라 작명해온 작명가들로부터 다수인을 위해 진실을 덮으라는 항의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바로잡고 옳은 길을 가야지 다수가 여태껏 그렇게 해왔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면 되겠나 싶었던 것이다. 바른 것, 옳은 것을 고집하는 그에게서 강직한 성품이 느껴졌다.
한자를 배우며 또 다른 기쁨을 얻다
김재식 선생님은 여러 교육원을 오가며 명리학과 성명학을 섭렵하던 중 용어 해석에 어려움을 느껴 한자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것이 또다른 보람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제가 명리학에 입문한지 2년 만에 성급하게 작명원을 열었어요. 다른 사람의 사주를 보고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한자를 더욱 깊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명리학에 사용되는 한자용어를 이해하고, 한·중·일 三國의 25억 인구가 모두 漢字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먼저 한자를 많이 알아야 기존의 작명가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 우연히 대한검정회의 신문광고를 접하고 한국한문교사 중앙연수원에 입학하여 한문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왕복 5~6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8년 동안 오가며 지도사 2급 과정을 시작으로 훈장 특급 과정(사서오경四書五經)까지 마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13년 제6회 전국한문경전성독대회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여 정읍시장으로부터 ‘성독 명인(聲讀名人)’증서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8년 12월에는 성균관 부관장으로 선임되었고, 2019년 봄에는 성균관 종헌관으로 춘기석전을 봉행하였다.
“석전(釋奠)이란 성균관 대성전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유교의 창시자이신 孔子를 비롯한 다섯분의 성인과 우리나라의 현인 18位, 중국의 현인 16位 등 모두 39위의 성인과 현인을 추모하고, 그분들의 위대한 덕을 기리기 위해 제향을 드리는 행사로, 1986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매년 봄, 가을에 성균관을 비롯한 전국 234개 향교에서 동시에 전례(奠禮)를 봉행하는것을 말하지요.” 그는 忠孝를 중요시하던 성인과 현인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석전에 제관의 일원이 되어 봉행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한자를 공부하며 장학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한자교육이 점점 쇠퇴하다시피 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대한검정회 장학회 창립에 한몫 했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자신의 편저 [신비의 신살 백과]의 개정판 100부, [혜당식 작명 十법 作名·解名 實務大典]초판 200부, 개정증보판 100부를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기증하여 원우들의 호응을 받아 5천여만 원의 기금을 마련하였고 훈장1급 특급과정에 승급하는 원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자를 배우고 바로 알면서 올바른 작명을 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 기틀을 다지고, 더불어 장학 사업이라는 좋은 일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었다.
장학사업! 내 삶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마지막 꿈!
올해 칠순이 된 김재식 선생님은 10여 년에 걸쳐 2천명이 넘는 작명을 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했던 작명장 사본을 연월일과 성별로 분류해 파일로 정리한 것이 사무실 한 쪽에 쭉 꽂혀있었다. “저는 작명하는 사람은 돈을 먼저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각지의 많은 사람이 저에게 와서 이름을 짓는데, 앞으로 100년을 살아가면서 쓸 이름이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게 작명을 하고 있죠. 이름은 받는 사람에게도 소중하지만 저에게도 정말 소중한 창작물입니다. 계속해서 공부하며 양심적으로 원칙에 따라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당진시청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가정의 신생아 100여 명에게 1년 10개월 동안 무료 작명을 해주기도 했다. 작명장을 받고 나서 감사인사를 전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퇴직 후, 작명가의 길에 들어선 것에 보람이 느껴진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해서 공부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김재식 선생님. 그는 앞으로 2~3년 안에 3억 원을 종중장학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으로 출연하여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점진적으로 더 큰 장학사업을 펼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큰돈은 아니지만 종중의 후대와 농촌지역사회의 인재양성에 쓰일 수 있도록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 제 남은 삶의 꿈이요, 마지막 목표입니다.” 훌륭한 인재양성을 위해서라도 김재식 선생님의 꿈이 더 커다란 결실을 맺길 기대해본다.

※ 본 코너에 실린 글은 취재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공단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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