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삶’을 말하다  >  인생일기 1
 
인생일기 1
글. 이원호 청도고등학교(구 청도여자고등학교) 퇴임
요즈음 내 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둘만 고르라면,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책 읽기와 노래 부르기를 선택할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의 나의 책 읽기는 거의 병적인 것이어서, 내 주변 지인들은 이미 이런 나에게 ‘그러려니’의 수준으로 마침내 ‘간서치(看書痴)’란 별명 즉 ‘책벌레’라고 이름 붙여 부르고들 있다. 노래 부르기는 조금은 덜 하지만 책 읽기에 버금가는 내 일상사의 하나다. 그것도 지금은 ‘준 성악가(?)’로 인정해주어 이런저런 모임 때마다 발표할 기회를 가지지만, 한 때는 ‘분위기 깨는 사람’으로 친구들의 눈총과 ‘귀총’을 무지 받았던 전력(前歷)이 있다. 나의 애창곡이 오직 ‘일편단심 우리 가곡’ 뿐이었으니 그러기도 했으리라.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에게 지금도 잊히지 않는 노래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였다. 그때는 중학교부터 입시가 있었기에 유능한(?) 선생님을 고학년 2년을 연거푸 담임하도록 한 것 같다.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은 사범학교 출신인데도 오르간을 잘 치지 못하시는 30대 초반의 남선생님이셨다. 음악 시간이 아예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음악책 속의 좋은 노래들은 책 속에서 아름다운 리듬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 모두가 그 시대의 입시교육에 묻힌 것이리라. 노래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때가 정서적인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입시에 별 관심이 없는 내게는 삭막하기만 한 수업 시간이었다. 늘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이 네 교과 수업밖에 없었다. 한 시간에 보통 두 칠판씩 선생님이 판서해둔 걸 공책에 베끼기 바빴다. 그 많은 판서 내용을 ‘열중쉬어’ 부동자세로 설명을 다 듣고 부리나케 베껴야 했다. 참으로 바빴다. 그런데도 때로는 다음 학습 판서를 위해 선생님은 지우개를 들고 조금씩 지워가면서 빨리 적기를 재촉하셨다. 그러고는 학습 내용 중 중요한 것은 무조건 외우기! 늘 이런 수업의 연장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시쳇말로 ‘머리에 쥐가 날 만’도 했다.
음악뿐이 아니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체육도 없었고, 미술도 없었다. 오직 스파르타식의 ‘태, 정, 태, 세, 문, 단, 세’의 주지 교육 밖에 없었다. 이런 삭막한 때에 5학년 가을 어느 날과, 6학년 여름 어느 날에 단 한 차례씩 있었던 음악 시간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참 지난 초가을 어느 날 넷째 시간, 느닷없이 일학년 담임인 여선생님 한 분이 우리 교실에 들어오셨다. 갑작스러운 여선생님의 출현에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저절로 “와” 환성을 질렀다. 우리의 뜻하지 않은 반응에 오히려 깜짝 놀란 선생님은 엉겁결에 출입문을 도로 열고 밖으로 나가셨다. 이윽고 한참 뒤에 얼굴이 빨개진 채로 들어오신 여선생님은 우리 담임과 한 시간 음악 교체 수업으로 오셨다면서 우리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으시고 칠판에 그날 배울 노래 제목을 쓰셨다. ‘꽈리’였다.
‘빨간 꽈리 입에 물고 / 뽀드득 뽀드득 / 동글동글 굴리다가 / 뽀드득 뽀드득 / 복사나무에 물을 주다 / 뽀드득 뽀드득 /’ 한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몇 차례, 그토록 애타게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보니 지금까지도 그 가사를 다 외고 있다. 그런 꿀보다 더 달콤한 음악 시간은 6학년 때 한차례 더 있었다. 여름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역시 4교시 때 ‘오죽했으면 여북했을까’ 시간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작년에 ‘꽈리’를 가르쳐 주신 그 여선생님이 여느 때처럼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들어오셔서 ‘여름’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셨다.

‘울 밑에 해바라기 꼬박꼬박/ 맴 돌∼다 맴 돌∼ 다 잠이 들고/ 앞마당에 바이 새근새근/ 닭 쫓∼다 닭 쫓∼다 잠이 들고/’ 이 노래의 포인트는 ‘맴돌~다’와 ‘닭 쫓~다’의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의 길게 뺌에 있다. 입 모양을 동그랗게 돌려야 제대로 음을 낼 수 있다. 한시간 내 선생님은 오르간 앞에 앉아 그 작고동그란 입술을 또르르 말아서 ‘맴돌다’와 ‘닭 쫓다’를 열심히 가르치셨다. 우리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도, 그 선생님의 입술 모양이 또 우스워 키들키들 웃기에 바빴다. 그때 그 시간, 즐거운 노랫소리와 간헐적인 웃음소리로 우리 교실은 행복했다. 2년 동안 배운 딱 2곡의 노래, ‘꽈리’와 ‘여름’은 일생 내 마음의 음악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는 노래로 남아있다. 그 두 곡을 배우던 그때의 음악 시간은 나에게는 천상의 멜로디가 흘러내렸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때 배운 노래와 예쁜 여선생님의 상기된 표정과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 모양까지 지금도 생생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인생일기> 독자 참여 안내
「사학연금」에서는 연금수급자 선생님의 일상이 담긴 수필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학연금과 관련된 연금수급 에피소드, 제휴복지서비스를 이용한 가족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상품권을 드립니다.
  • 원고분량 : A4 1장 반 내외(글자 크기 10포인트 기준)
  • 참여방법 : magazine@tp.or.kr로 이름, 전화번호와 함께 작품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