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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이행림 / 사진. 김정호
봉은사 현판 보며 서예에 관심 가져
서예는 익히 아는 바이지만 서예술은 생소했다. 서예술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만난 예문해 선생님, 그는 서예술을 동양서예와 서양서예라 할 수 있는 캘리그라피의 만남이라 소개했다. 서예술에 심취해 산 세월이 벌써 27년째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어쩌다 서예술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 일까?
경영학을 전공해 학교에서도 경제나 무역 쪽을 가르쳤던 예문해 선생은 재직시절 주식에 참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서예술을 이야기하다 말고 때아닌 주식을 언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79년에 명동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옮겨지면서 여의도 증권가 시대가 열렸어요. 증권가의 호황으로 증권사 영업장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였죠. 그 분위기를 타고 퇴근 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증권사 지점에 들려 판세를 보는 것이 당시 제 취미였어요. 그런데 그게 오래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은 아니었어요.
증권사 영업장을 드나들면서 증권투자를 하게 됐는데, 종목별로 시세 등락차가 많아져서 주식을 팔아야 할 때를 놓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손절매할 능력도 안 되는 상황까지 가서 주식매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 참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주식 말고도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으로 지쳐있었거든요. 그래서 지친 심신을 달랠 생각으로 가까운 삼성동 봉은사를 찾게 됐죠.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거기 가서 바람도 쐬고, 약숫물도 마시고 그러면 힘이 날 것 같은 거예요. 그때는 봉은사 판전 바로 아래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물을 마시다 우연히 봉은사 판전 현판을 보게 됐어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그 현판 글씨를 본 순간 단번에 매료됐죠.” 예문해 선생이 단번에 매료됐다는 봉은사 현판은 획의 뻗침이나 글자의 생김새 등이 거칠 것 없고 아이가 쓴 것처럼 고졸한 필체가 특징으로, 구전에 따르면 추사 김정희가 삶을 마감하기 사흘전에 쓴 것이라 한다. 명필가 중의 명필가인 추사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었기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예문해 선생은 붓과 인연을 맺게 된다.

“봉은사를 찾았던 때가 80년대 중반이었고, 본격적으로 서예공부를 한 건 1992년도부터예요. 그때부터 서실에 나가 한자도 하고, 사군자도 했죠. 글씨는 먼저 김정희 예서체와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유행했던 구양순체를 학습했어요. 다음으로 왕희지와 안진경의 행서체를 학습하고, 중국 북송 서예가 황정견의 초서체를 섭렵해나갔죠. 김정희, 구양순, 왕희지, 안진경, 황정견을 거치지 않고서는 서예를 했다고 할 수 없거든요.”
서예술은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자세로
집에서는 이론 공부에 집중하고, 서실(書室)에 나가서는 붓을 들고 임서에 힘을 쏟으며 옛 명필가들의 서체를 두루 섭렵해나간 예문해 선생은 특히 행초서 쓰기를 각별히 여겼다.
“대부분 그렇게 잘 안 하는데 저는 행초서를 많이 써요. 쓰다 보니 이 행초서라는 게 캘리그라피와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특히 황정견의 초서가 현대서예나 캘리그라피와 통해요. 황정견 선생은 캘리그라피의 선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황정견의 초서는 가늘고 힘차면서 종횡이 유쾌하고 탄력이 있다는 게 뒤이은 설명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내달리는 운필(運筆)도 황정견초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지금의 캘리그라피와 통한다는 것이다. “캘라그라피도 틀을 벗어나 있어요. 반면 전통서예는 그 체에 아주 충실해야 해요. 교과서적인 글씨라고도 볼 수 있죠. 물론 서예를 하는 사람은 전통서예에 몰두해 그 경지를 맛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컴퓨터그래픽이나 인쇄술이 발달한 지금의 환경에서 전통서예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보면 황정견의 행초서처럼 운필을 자유자재로 해서 미적감각이 뛰어난 그런 서체로 빠지려는 사람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서예의 확장이라고나 할까요?” 선생은 현시대에 부응하는 서예술의 진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예술을 함에 있어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이란 말이 있죠? 글씨도 마찬가지예요. 뭔가 새로운 걸 하려 해도 전통서예가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캘리그라피를 하더라도 전통서예 학습과정을 거치고 그 바탕 위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스운 글씨체가 나오기 십상이죠.”
전통서예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는 가운데 캘리그라피의 진일보를 꿈꿔온 선생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집과 서실에는 전통서예뿐만 아니라 틀을 깬 독창적이면서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그 작품들을 보며 ‘글씨를 잘 쓴다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았다. “글씨를 쓸 때는 붓을 잡는 것만으로 안 되죠. 운필(運筆), 즉 붓을 움직여야죠. 그런데 또 붓을 움직이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글씨에 운치나 정취가 깃들어야 하니까요. 글씨라는 건 붓을 잡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고, 붓을 잘 움직여 결국은 멋있게 운치 있게 써야 한다는 뜻에서 저는 늘 강조합니다. ‘집필(執筆)과 운필(運筆)은 기(氣)와 운(韻)으로’라고요.” 선생은 ‘서여기인(書與其人)’이라는 말도 강조했다.
“서여기인, 글씨 속에 쓰는 자의 인품과 인격이 들어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좋은 글씨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서예를 하자면 음악적 소양도 뒷받침돼야겠다 싶어 강동구립남성합창단에 들어가 합창단이 해단될 때까지 수년간 공연활동을 했었습니다. 공연활동도 결국은 봉사활동의 일환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그런 시간들이 좋은 글씨를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회, 출간, 그리고 시비석 기증의 꿈
서여기인의 철학이 담긴 선생의 작품들은 전시회를 앞두고 있었다. 전시 장소는 서울강남구민회관 홍보전시관, 전시명은 ‘예문해 서예술 개인전’. 전시회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는 순간이야말로 하루를 꼬박 붓과 씨름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은 순간일 터. 선생은 그 순간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붓을 들었다. 물론 전시회 준비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간 개인전, 초대전, 회원전 등 다수의 전시회를 준비하고 참여해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9월에는 출간 소식도 들려주었다. 옛 성현들의 명훈과 명구 150개를 엮어 만든 예문해 선생의 편저 作 「한 가정 명훈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예문해 선생에게 또 하나의 바람이 생겼단다.

“가끔 산책하러 청담공원을 찾는데, 그곳에 보면 여러 개의 시비석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내고향 언덕 비탈길에도 저런 시비석을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 대리석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석재상 얘기로 자연석은 깊이 새기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대리석을 활용해 멋진 필체로 시비석을 만들어 고향 언덕에 세워 두고 고향 사람들, 또 제 고향(경북 청도)을 찾은 방문객들과 제 작품의 뜻을 나누고 싶은 바람입니다.”
자신의 철학을 독창적인 필체에 담아 많은 이와 나누고픈 예문해 선생님. 그의 글씨가 옛 명필가들의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에게 강렬한 인상과 깊은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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