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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일기 2
글. 박창원(동화고등학교 퇴임)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혈압이 올랐다. 더 진행되게 방치할 수 없어 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네 조기 축구회를 찾아 회원으로 가입하고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에 소질이 없어 연습 경기에서 공 한 번 차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뛰었지만 몇 년이 되어도 혈압이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서가 진지하게 충고했다. “담배 끊고, 마라톤 뛰세요.” 곧장 그 말대로 했다. 안하던 짓을 하자니 조금만 뛰어도 심장이 아팠다. 속도는 고사하고 달리는 시간과 거리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라톤에 대한 지식도 없이 발목에 침을 맞아가며 열심히 달렸다. 더 잘하고 싶어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여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생명의 끈을 꼭 쥐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풀코스, 하프코스, 강북 5산 울트라, 지리산 종주 울트라, 100k 울트라 등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훈련도 많이 했고, 달리다가 다리에 쥐가 나 고생도 여러 번 했다. 욕심이 나서 시간 단축한다고 오버 페이스 하여 죽을(?) 고생도 했다.

이제는 빠르지는 않지만 산이고 들이고 마음먹은 대로 잘 달린다. 한번은 산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오니 지나던 등산객이 한마디 했다. “그러다가 무릎다 망가져요.” 바로 응대했다. “이렇게 뛴 지 십 년이 넘었는데요.” 대회를 나갈 때마다 은근히 조바심을 내게 된다. 잘 달릴 수 있을까? 완주할 수 있을까? 아무리 못 뛰어도 어느 정도의 기록은 이루어야 할 텐데 다리에 쥐가 나서 고생하면 어쩌지? 달리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어쩌나? 보통 10km 지점까지는 무난히 잘 달린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피로의 시작이다. 피로한 기색 없이 굳건하게 잘 달리는 다른 이들을 보면 은근히 주눅 들기도 한다. 전에는 욕심이 나서 10km 단위로 주는 간식을 먹지도 않고 달렸지만 이제는 주는 대로 조금씩이라도 먹는다. 그것도 하나의 재미라 생각한다. 달릴 때마다 그 지역의 특징적인 향기가 난다. 풀 향기, 솔 향기, 과일 향기, 더덕 향기, 가축 냄새, 생선 비린내, 물 냄새 등 다양하다. 시각과 청각 이외에 후각으로도 달리는 구간을 기억하는것이다. 가장 좋았던 냄새는 참외밭에서 풍겨오는 농익은 참외 냄새와 소나무 숲에서 풍겨오는 솔 향기였다. 뿐만 아니라 흙냄새와 같은 자연 향은 다 좋다. 그러나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과 공장에서 나오는 역한 냄새, 그리고 담배 연기는 아주 고약하다. 달릴 때 도로변에서 동호회 회원들이 응원해주거나 어머니와 손을 잡고 길을 가던 어린아이가 손을 흔들면 너무나 신나고 고맙다. 구간마다 응원하며 먹을거리와 마라톤 음료를 제공해주는 도우미들도 고맙다.
거기에다 지역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악기나 사물놀이로 응원해주면 더 우쭐해지고 열심히 달리게 된다. 하지만 30km만 지나면 체력이 떨어져서 경치를 감상할 마음도 없어지고 기록이나 경쟁에 대한 욕심도 다 사라진다. 다만 완주만이라도 잘하자고 다짐하며 마음을 비우게 된다. 도착점이 가까워질수록 피로는 극에 달한다. 발이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완주 후에 찾아오는 기쁨을 미리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도착 지점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손뼉을 치고 있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환호가 대단하다. 도착 지점을 늠름한 모습을 유지하며 멋지게 통과하자고 마음먹는다. 매번 잘 안 되지만 그래도 의연하게 마치고자 애쓴다. 커다란 도착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동시에 상쾌한 전자 신호음이 들리면 또 한 번의 완주를 이룬 것이다. 사석에서 은근히 자랑해보지만 마라톤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흘려듣거나 흥미 없어 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무용담은 항상 과대포장된다.

마라톤은 참 매력적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언제든 할 수 있다. 건강을 지켜준다. 특히 혈압을 잘 유지해 준다. 더하여 완주 후에 찾아오는 안도감과 성취감은 최고의 기분을 안겨준다. 경치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지방대회는 참여할 때마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완주 후에 그 지역의 문화재 등을 관광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봄엔 어디를 가나 꽃 천지다. 특히 벚꽃 터널을 달릴 때는 환상적이다. 힘든 중에도 꽃향기에 매료되기 일쑤다. 가을도 멋지다. 깨끗한 거리와 단풍에 물든 산들을 배경으로 달리는 기분도 좋지만 은행잎으로 덮인 노란 길을 달릴 때는 취한 듯 마음을 빼앗긴다. 한여름 삼복 더위에 달리는 것도 매력적이다. 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연습하지만 이때는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당연하고 신발까지 질척거린다. 그렇게 땀을 다 빼듯이 달리고 나면 쾌감이 다가온다. 한겨울에 달리는 것도 매력적이다. 아침에 모여 웅숭그리며 몸을 풀고 달리지만 찬바람에 부딪히면 통풍이 잘되는 마라톤화이기에 금방 발이 얼고 장갑을 낀 손, 특히 손가락 끝이 아리도록 시리며 볼도 얼어간다. 그래도 숨을 몰아쉬며 몇 km 정도 달리다 보면 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난다. 두어 시간 달리고 나면 모자에 고드름이 맺히고 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제는 등산하러 가거나 특정한 곳을 갈 때면 머릿속에 거리를 가늠하고 뛰어가려는 습관이 생겼다. 거기 몇 km 정도인데 그냥 뛰면 되지 않을까? 오늘은 오일장이 열리는 날인데 달려가서 국수 먹고 전철 타고 돌아올까? 궁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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