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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바람 따라
글과 사진. 박동식(여행작가)
보이는 모든 것이 풍경이로구나 -사성암
사성암은 구례읍 남쪽 죽마리 오산(鰲山) 정상에 자리한 아담한 사찰이다. 도로에서의 거리는 약 2.7km. 하지만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지형이다. 사성암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매우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다. 그 때문에 승용차들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사성암은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원효(元曉), 도선국사(道詵國師), 진각(眞覺), 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고 해서 사성암이라고 부른다.
사성암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암벽에 위태롭게 세워진 법당이다. 암벽에 납작하게 붙은 법당은 달랑 세 개의 기둥에 의지하고 있다. 행여 고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 소설에나 등장할 것 같은 모양새다. 좌우로 굽은 돌계단을 올라 법당에 다다르면 시원하게 트인 전망이 시선을 압도한다. 비로소 높지도 않은 541m 오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산이 있어 강이 있고, 강이 있어 산이 돋보이는 풍경. 가을빛을 한껏 받은 산등성이와 말도 없이 흐르는 섬진강. 왼쪽부터 병풍산, 봉두산, 천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 사이를 지나 남쪽에서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강은 구례 황전리 북쪽 차일봉에서 발원한 황전천이다. 사성암의 법당은 여느 사찰에 비하면 매우 좁은 편이다. 법당 안 불상을 모시는 자리에는 커다란 유리가 설치되어 있고, 그 너머 암벽에 불상이 음각되어 있다. 바로 마애약사여래불이다. 금분이 칠해진 마애약사여래불은 원효스님이 손톱으로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사성암의 볼거리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법당에서 내려와 왼쪽 돌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볼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계단이 꺾이는 곳에 자리한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 그중 한 그루는 마치 오래전부터 섬진강을 바라보며 수행이라도 한 듯 곱게 늙은 모습이다.
사성암의 모든 전각이 그렇듯 지장전과 산신각도 매우 아담한 편이다. 외람되지만 사찰이 아니라면 방 하나 들여서 살고 싶은 곳. 그곳에서라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 따위는 사라질 것 같기만 하다. 산신각 옆은 도선굴이고 앞은 소원바위다. 도선굴은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바위틈이다. 양쪽 통로가 뚫려있으며 가운데 작은 공간에는 기원을 담은 초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소원바위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은 들어준다는 바위다. 사람들은 소원지를 적어서 그곳에 매달아놓는다. 소원바위를 끼고 암벽길을 돌아서면 또 한 번 놀라운 경치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좌측의 구례읍과 우측의 토지면을 비롯하여 공룡의 등뼈처럼 길게 늘어선 지리산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 좌로부터 간미봉, 단복대, 성삼재, 차일봉, 노고단, 반야봉을 비롯해 천왕봉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름 없는 꽃들까지도 장엄하게 – 화엄사
화엄사는 지리산 등반로의 주요 시작점이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화대종주’라는 말이 있는데, 화엄사에서 등반을 시작해 대원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말한다. 그 때문에 화엄사일주문 앞에서는 삼삼오오 무리지어 지리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금강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면 저만치 계단위에 보제루가 보인다. 맞배지붕의 중성적 외형이 단청 없는 담백함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보제루를 돌아서 큰 마당으로 들어서면 맞은편에는 대웅전이, 좌측으로는 각황전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의 가람에 두 개의 중심이 서 있는 형국이다. 보제루는 화엄사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다. 여행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웅전 모습도 일품이다. 화엄사 대웅전은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네 칸으로 분리된 돌계단을 하나하나 밟는 사이 장중한 대웅전은 지붕부터 차츰차츰 솟아오른다. 계단을 모두 오르고 대웅전 앞에 서서야 비로소 그 크기에 놀라게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계단 아래 마당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동탑과 서탑은 대웅전을 지키는 든든한 호위무사 같기도 하다. 각황전은 대규모 2층 목조 건물에 어울리는 팔작 지붕이다. 단청도 없이 고색창연한 모습에 가슴까지 뭉클할 정도다. 각황전은 670년경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장륙전이 전신이다. 소실된 것을 조선 숙종 때 다시 지었다. 본래 장륙전 내부사방에는 화엄경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하니 각황전은 불교의 화엄사상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전각이나 진배없다.
각황전 앞 중심에 세워진 석등은 각황전의 위용에 뒤질세라 당당하고도 기품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등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여덟 장의 연꽃잎이 둘린 밑받침은 아름다운 곡선미가 돋보이며 이어지는 선들도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석등의 본체는 팔각 모양이며 지붕은 모서리마다 하늘로 향하고 있어 석등의 예술성을 완성해준다. 6.2m에 달하는 규모에 섬세한 조형미까지 겸비한 걸작이다. 각황전 마당을 가로질러 서쪽 계단으로 향하면 나무들로 우거진 지그재그 계단이 나타난다. 이곳을 오르면 신라 석조 예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4사자3층석탑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석공 기술이 최정상급에 다다랐을 때 지어진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4사자3층석탑은 보수 공사 중이며 2020년이 되어야 일반에게 다시 공개된다. 신라인들은 경주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중요한 산들이 그들의 국토를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다. 중악 부악산, 동악 토함산, 서악 계룡산, 북악 태백산, 남악 지리산이 바로 그것이다. 화엄사는 그들의 믿음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사찰이다. 화려하지 않은 온갖 꽃들까지도 장엄하다는 화엄의 뜻에 따라 돌계단 하나라도 사사로이 볼 수 없는 심오한 공간이며 두고두고 발걸음을 놓아주지 않는 사색의 장이 바로 화엄사다.
불편이 주는 휴식 - 운조루와 쌍산재
운조루와 쌍산재는 구례를 대표하는 고택이다. 운조루 당호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의미이며, 중국 도연명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T자 모양의 사랑채다. 사랑채 끝은 정자처럼 사방이 트여있다. 요즘처럼 바람이 선선한 날은 더없이 좋은 안식처다. 누구든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운조루에는 조금 독특한 뒤주가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중문 사이에 있는 통나무 원형 뒤주다. 뒤주 아래 구멍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누구든 마개를 열고 쌀을 담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뒤주에는 항상 쌀이 가득했다고 한다. 부귀를 누리던 양반 집안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살핀 흔적이다. 운조루에서 배우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쌍산재는 운조루에 비해 역사성은 덜하지만 규모는 훨씬 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에는 근래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다실이 있다. 그리고 정면으로는 대숲이 우거진 돌계단이다.

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넓은 잔디밭이고 우측으로 살짝 돌면 또 하나의 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에는 쌍산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키 낮은 대문과 허리가 굽은 나무, 그리고 낡은 목조 건물. 통로마저 비좁은 풍경에서 느끼는 아늑함이라니. 아무렇게나 놓인 돌덩이까지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곳이다. 사선으로 들어온 빛이 툇마루 깊숙이 찾아든 모습에서 늦은 오후를 짐작할 뿐, 아무것도 급하지 않은 하루가 그렇게 흘러간다.
함께 들러보세요!

곡선재
곡전재는 구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고택이다. 승주지역에 살던 7천 석 부호 박승림이 10여 년간 명당을 찾다가 발견한 터에 지은 조선 후기 한옥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집안을 휘어 도는 작은 물길이 인상적이다. 안채 뒤편에는 작은 대숲도 있다. 한옥스테이도 운영한다.
  • 주소 : 구례군 토지면 길 15-2
  • 전화번호 : 010-5625-8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