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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돋보기
글. 양은우(한국능률협회 전임교수, <관찰의 기술>,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 저자)
이슈가 된 고령 운전
최근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83세 노인이 운전하던 차가 인도로 뛰어들면서 2명의 행인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90대 노인의 차에 치여 30대 행인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브레이크와 엑셀을 혼동해 병원으로 돌진한 80대 운전자도 있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8년에 10,155건이던 고령 운전자 사고가 2017년에는 26,713건으로 최근 10년간 163%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렇듯 고령 운전자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다 보니 고령자에 대한 운전 제한이 국가마다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운전자 평가 결과에 따라 주간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운전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거나 자동 변속과 같은 운전 보조 장치, 교정 안경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운전면허에 제한을 두는 제도를 실행 중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 1988년부터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면 대중교통 요금을 할인해 주거나 추가금리를 제공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제도 보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동권 제약에 대한 우려로 면허갱신 기간을 단축하거나 적성검사 시 인지능력 자가진단을 하는 등 최소한의 제도만 소극적으로 실행하는 형편이다.
고령 운전이 위험한 이유
안타깝게도 고령 운전은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무한히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시력이나 청력 등 모든 감각기관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무엇보다 문제는 뇌가 늙어간다는 것이다. 뇌의 신경세포는 20대 초반에 최고조에 달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일부 신경학자들에 따르면 10년마다 전체 뇌세포의 2%가 사멸한다고 한다. 70대 중반이 되면 20대 보다 10% 정도 뇌세포가 적어지는 셈이다.
뇌세포가 줄어든다는 것은 무언가 기능을 발휘해야 할 때 필요한 신경회로의 연결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뇌의 지배를 받는 신체 반응이 둔해질 것은 명확하다. 운전 중 위험한 상황과 맞닥뜨린다고 가정해보자. 위험 상황을 눈으로 보고 그것이 뇌에 신호를 보내면 뇌는 상황을 인지하고 운동 피질에 명령을 내려 손으로 운전대를 조작하거나 발로 브레이크를 밟도록 한다.
이 모든 상황이 신경회로 간의 연결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신경세포의 사멸로 인해 연결이 원활하지 않으면 반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고령 운전자의 반응속도는 젊은 사람에 비해 0.1초 느리다고 하는데, 시속 60km로 달린다고 할 때 브레이크를 밟을 때까지 거의 2m 정도를 더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경세포막이 굳어져 신경전달물질의 합성과 방출이 감소하는데, 이는 반응속도를 더욱 늦춘다.
안전하지 않다면, ‘운전’ 다시 생각해보자
뇌의 노화는 머리 앞쪽에 위치한 전두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부위의 기능이 저하되면 집중력과 판단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운전을 하다가도 전방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자주 신경이 분산되어 위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주의를 전환하는 일도 늦어지게 되는데, 이것 역시 위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는 속도를 늦추게 한다. 공간이나 방향 감각을 관장하는 영역의 노화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고 차도가 아닌 인도로 뛰어드는가 하면, 운동 피질의 노화로 운전대를 원활하게 조작할 수 없어 충돌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잠의 질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기능의 저하와 함께 잠의 질이 떨어지는데 숙면을 취할 수 없으므로 졸음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약해진 방광으로 인해 잠자리에서 자주 깨는 것이나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수면 주기가 달라지는 것도 졸음운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잠의 질이 나빠지면 운전 중 자신도 모르게 미세수면에 빠질 수 있는데 자신은 깨어 있다고 느끼지만 뇌는 잠이 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운전은 흉기를 몰고 다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떤 사람도 신체의 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평소 체력관리가 잘 되어 있고 건강하다고 장담하는 경우에도 우리의 몸과 뇌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섭섭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평소 자신의 운전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등 운전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