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성공의 인생이모작 수기 공모 장려상 

장애 없는 세상 이야기

허유승 대기고등학교 퇴임

퇴직을 하면서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한 가지는 발달장애인의 아버지이자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전문가이며, 35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선배 교사로서, 이제 막 임용이 되어 발달장애아들을 만날 예비교사들에게 특수교육학 강의를 통해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고, 전국 관공서를 다니면서 장애, 특히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강연을 하는 일이다. 일반인도 그렇지만 교직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특수교육학’이란 학문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발달장애’라는 말을 처음 듣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예비교사들에게 ‘자폐성장애’ 와 ‘지적장애’를 설명하며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장애아를 보여주고 문제행동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들을 차근차근히 그려냈다. 비장애 형제들을 소개할 때면 많은 예비 선생님들이 속상해한다. 절망하고 분노한다. 내가 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 학기 동안 ‘장애인’ 을 찾아 세 번 이상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제야 조금은 장애를 알게 되고 통합교육에 대하여 함께 고민한다. 모두 그 당위성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학교의 문턱을 낮추겠노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동안도 그들이 ‘장애’를 모른체하 거나 피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가슴에 와 닿게 깨우 쳐주지도 않았고, 먼저 다가와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장애’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그동안 배운 장애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체험을 몸소 실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퇴직 교사의 한 가지 바람은, 아직은 ‘진행 중’이다. 두 번째 바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식개선 강사로서 장애인식개선 강연을 할 때 예를 들던 사례이다. 한 친구가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바로 뒤에 어떤 아가씨가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마치 가방을 뺏으려는 듯 아가씨에게 덤비는 것이었다. 기겁하며 아가씨는 비명을 지르고, 덤벼드는 아이를 승객들이 저지했지만 그 힘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버스기사는 경찰서 앞에 세웠고 경찰은 수갑을 채웠다. 경찰서 안에서도 아이는 길길이 뛰면서 가방을 뺏으려고 하는 동안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달려왔다. 아버지는 상황판단을 하는데 1분도 안 걸렸다.

“아가씨! 가방에 지퍼 좀 닫아주시겠어요?” 아이는 가방에 지퍼가 열려 있는 걸 그냥 못 넘기는 ‘자폐성 장애인’이었다. 버스에 탔던 그 아가씨를 비롯해서 승객 누구도 자폐아이가 갖는 특성을 몰랐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기사도 자폐에 대하여 배운 적이 없었다. 최소한 경찰 공무원이라도 ‘자폐’를 학습했다면! 수갑까지 채워 데려 갔을까? 아이의 아버지께 이 일을 강연할 때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묻자 제발 그래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알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겉으로 나타나는 불편함만 장애로 아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더 이상 장애를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여태 그들의 부모들만 키워온 아이들을 이제 모두가 부모가 되어 함께 키워보자고 이야기하며 다니고자 했다. 그러다가 ‘하음앙상블’을 만났다. 하나의 소리로 하모니를 이루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우연히 내 아이가 첼로를 알았고, 첼로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이의 가슴속 응어리를 뱉어내는지 아이의 문제행동이 점점 줄어들었다. 합주를 통해 함께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기다림과 어울림을 배우더니 다른 단원들과 가족들 그리고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다.

일주일에 7일을 연습하면서 기회는 사람을 변하게 하였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우리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처음에는 놀라고, 나중에는 감동을 받는다. 나도 역할이 있다. 난 연주전에 우리 단체를 소개하면서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좀 더 숙연해지면서 다음 곡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너무 고맙다. 앙상블은 조화로움이고 조화로움은 잘 어울리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이 잘 어울릴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면 모두가 그 손을 잡아준다. 그래서 이 관객들이 함께 가는 내일은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퇴직할 때 원했던 두 가지를 다하는 행운을 안고 산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믿고 따라주고 격려해주는 많은 예비교 사들을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인 우리 부모들을 위해서도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제3회 성공의 인생이모작 수기 공모 장려상

장애 없는 세상 이야기

허유승 대기고등학교 퇴임

퇴직을 하면서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한 가지는 발달장애인의 아버지이자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전문가이며, 35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선배 교사로서, 이제 막 임용이 되어 발달장애아들을 만날 예비교사들에게 특수교육학 강의를 통해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고, 전국 관공서를 다니면서 장애, 특히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개선 강연을 하는 일이다. 일반인도 그렇지만 교직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특수교육학’이란 학문이 어떤 학문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발달장애’라는 말을 처음 듣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예비교사들에게 ‘자폐성장애’ 와 ‘지적장애’를 설명하며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장애아를 보여주고 문제행동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부모들을 차근차근히 그려냈다. 비장애 형제들을 소개할 때면 많은 예비 선생님들이 속상해한다. 절망하고 분노한다. 내가 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 학기 동안 ‘장애인’ 을 찾아 세 번 이상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제야 조금은 장애를 알게 되고 통합교육에 대하여 함께 고민한다. 모두 그 당위성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학교의 문턱을 낮추겠노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동안도 그들이 ‘장애’를 모른체하 거나 피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가슴에 와 닿게 깨우 쳐주지도 않았고, 먼저 다가와 장애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장애’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그동안 배운 장애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체험을 몸소 실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퇴직 교사의 한 가지 바람은, 아직은 ‘진행 중’이다. 두 번째 바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식개선 강사로서 장애인식개선 강연을 할 때 예를 들던 사례이다. 한 친구가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바로 뒤에 어떤 아가씨가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갑자기 마치 가방을 뺏으려는 듯 아가씨에게 덤비는 것이었다. 기겁하며 아가씨는 비명을 지르고, 덤벼드는 아이를 승객들이 저지했지만 그 힘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버스기사는 경찰서 앞에 세웠고 경찰은 수갑을 채웠다. 경찰서 안에서도 아이는 길길이 뛰면서 가방을 뺏으려고 하는 동안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달려왔다. 아버지는 상황판단을 하는데 1분도 안 걸렸다.

“아가씨! 가방에 지퍼 좀 닫아주시겠어요?” 아이는 가방에 지퍼가 열려 있는 걸 그냥 못 넘기는 ‘자폐성 장애인’이었다. 버스에 탔던 그 아가씨를 비롯해서 승객 누구도 자폐아이가 갖는 특성을 몰랐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버스기사도 자폐에 대하여 배운 적이 없었다. 최소한 경찰 공무원이라도 ‘자폐’를 학습했다면! 수갑까지 채워 데려 갔을까? 아이의 아버지께 이 일을 강연할 때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묻자 제발 그래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알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겉으로 나타나는 불편함만 장애로 아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더 이상 장애를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여태 그들의 부모들만 키워온 아이들을 이제 모두가 부모가 되어 함께 키워보자고 이야기하며 다니고자 했다. 그러다가 ‘하음앙상블’을 만났다. 하나의 소리로 하모니를 이루는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우연히 내 아이가 첼로를 알았고, 첼로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이의 가슴속 응어리를 뱉어내는지 아이의 문제행동이 점점 줄어들었다. 합주를 통해 함께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기다림과 어울림을 배우더니 다른 단원들과 가족들 그리고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다.

일주일에 7일을 연습하면서 기회는 사람을 변하게 하였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우리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처음에는 놀라고, 나중에는 감동을 받는다. 나도 역할이 있다. 난 연주전에 우리 단체를 소개하면서 ‘발달장애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좀 더 숙연해지면서 다음 곡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너무 고맙다. 앙상블은 조화로움이고 조화로움은 잘 어울리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이 잘 어울릴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면 모두가 그 손을 잡아준다. 그래서 이 관객들이 함께 가는 내일은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퇴직할 때 원했던 두 가지를 다하는 행운을 안고 산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믿고 따라주고 격려해주는 많은 예비교 사들을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인 우리 부모들을 위해서도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