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가
인생의 황금기이다

장길환 동명대학교 퇴임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은 세계 3대 컵 박물관의 하나인 강릉의 환희 컵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현재 4,500여 점 정도이고, 세계 76개국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공사립 박물관 중에서 외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일 것이다.
내가 교육자였고,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박물관의 시스템도 과감히 시대에 맞게 완비하여 NFC와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 되었다. 2020년에는 강릉의 유명한 커피거리인 안목해변으로 이전하여 Fantaseum이라는 건평 2,212.56m²의 복합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새로운 미술관 개관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 중에서 빅3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술관은 국립박물관도 소장 못 하고 있는 고대 간다라 미술의 조각품들과 크메르 왕조 조각의 진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 될 것 이다.
오늘날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은 내가 교직에 재직할 때부터 나의 퇴직 후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고, 그 실천을 빈틈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교직생활은 대한민국 교직의 화석과도 같다. 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가 가정형편으로 갈 수 없게 되자 교육대학에 갔고, 생년월일이 늦어 발령을 못 받자 초등학교 임시교사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4년제 대학에 다시 진학했고,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외국 4년제 대학교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 나는 ‘순차적으로 올라간 가장 다양한 교직 경력자’라는 한국 기록을 갖게 되었고, 한국 기록원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밀양의 세종중학교에 재직했던 1978년에 나는 그 부근에서 출토된 신라의 토기 하나를 구입했다. 비록 깨어져 접착제로 붙인 컵이었지만 허리가 잘록하고 손잡이가 멋진 곡선을 이루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Mug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완(碗)만을 사용하던 아시아 존(zone)에 손잡이가 있는 이런 Mug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부터 컵을 찾아 떠나는 나의 여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소장한 컵이 1,500개를 넘길 때 나는 동명대학교로 직장을 옮겼고, 그때 박물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했다. 제일 먼저 건립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내가 받는 월급으로 그런 새로운 사업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방안을 구상하였는데 부동산만큼 목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부산 근교 저렴한 가격에 넓은 면적의 임야와 밭을 샀다. 나는 몇 년 후 그 밭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백송 씨앗을 파종했다. 주말은 농장에서 사는 농부였다. 이렇게 10년을 기른 백송이 나중에 주 수입원이 되었고, 그때 매입해 두었던 토지들이 LH공사 개발에 수용되면서 박물관의 자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박물관이라는 문화사업을 생각한 것은 ‘지금은 모두 경제 욕구만을 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동안 굶주렸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멋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재직 시 퇴직 후의 나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사업자금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박물관을 세우고 처음 3년은 적자를 기록하여 계속 내가 가진 자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금 전국 대다수의 사립박물관처럼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어 박물관의 순기능을 할 수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이때 나는 과감히 수입창출을 위해 박물관의 대변신을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에이전트 망을 구축하여 그 나라의 명품 컵을 싼값에 수입하여 판매하게 되었고, 컵과 함께 오르골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카페를 만들어 커피, 차, 음료수, 팥빙수 등을 판매하여 수입의 다변화를 시도했고, 최첨단 체험 시스템인 NFC와 AR 증강현실 체험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컵 만들기 체험과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문화부나 문화재단의 각종 국가사업에 선정되어 수입 창출과 함께 박물관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지금은 사계절 끊임없이 관람객과 학생들이 찾는 박물관의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박물관이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순수익이 연 1억 원을 넘기게 되자 제2의 Fantaseum 사업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직에 계시는 분들에게 권한다. 적어도 퇴직 후 30년은 이 세상에 살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30년을 보내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키울 정도의 충분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의 계획을 잘 세우고, 퇴직 후 즉시 그것을 시작한다면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꼭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등단할 계획을 세워 도전하면 한국의 유명한 작가까지 될 수 있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10년 이상 정진하여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화가가 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취미를 넘어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는 야심은 육체의 노화를 분명하게 늦추어 줄 것이다. 교직 때의 전공이나 교직과 연관된 것은 새 사업의 걸림돌이 된다. 바로 고정관념 때문이다. 교직 때의 전공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구가하고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감한 결단력만 있다면 말이다.
유년기와 방황의 청년기를 제외한다면 인생 90세를 기준으로 퇴직 후 30년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시기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무엇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금력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욕구와, 노련한 경험이 있어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10년 후 또 다른 멋진 나를 위해 재직하고 있는 지금 직장에서 퇴직 후 삶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볼 일이다.

퇴직 이후가
인생의 황금기이다

장길환 동명대학교 퇴임

내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은 세계 3대 컵 박물관의 하나인 강릉의 환희 컵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현재 4,500여 점 정도이고, 세계 76개국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공사립 박물관 중에서 외국의 유물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일 것이다.
내가 교육자였고, 디자인을 했었기 때문에 박물관의 시스템도 과감히 시대에 맞게 완비하여 NFC와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 되었다. 2020년에는 강릉의 유명한 커피거리인 안목해변으로 이전하여 Fantaseum이라는 건평 2,212.56m²의 복합 문화시설을 건립하여 새로운 미술관 개관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 중에서 빅3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술관은 국립박물관도 소장 못 하고 있는 고대 간다라 미술의 조각품들과 크메르 왕조 조각의 진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미술관이 될 것 이다.
오늘날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은 내가 교직에 재직할 때부터 나의 퇴직 후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고, 그 실천을 빈틈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의 교직생활은 대한민국 교직의 화석과도 같다. 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다가 가정형편으로 갈 수 없게 되자 교육대학에 갔고, 생년월일이 늦어 발령을 못 받자 초등학교 임시교사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4년제 대학에 다시 진학했고,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외국 4년제 대학교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결과 나는 ‘순차적으로 올라간 가장 다양한 교직 경력자’라는 한국 기록을 갖게 되었고, 한국 기록원으로부터 인증도 받았다.
밀양의 세종중학교에 재직했던 1978년에 나는 그 부근에서 출토된 신라의 토기 하나를 구입했다. 비록 깨어져 접착제로 붙인 컵이었지만 허리가 잘록하고 손잡이가 멋진 곡선을 이루는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진 Mug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완(碗)만을 사용하던 아시아 존(zone)에 손잡이가 있는 이런 Mug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부터 컵을 찾아 떠나는 나의 여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소장한 컵이 1,500개를 넘길 때 나는 동명대학교로 직장을 옮겼고, 그때 박물관 건립계획을 구체화했다. 제일 먼저 건립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내가 받는 월급으로 그런 새로운 사업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방안을 구상하였는데 부동산만큼 목돈을 만들어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부산 근교 저렴한 가격에 넓은 면적의 임야와 밭을 샀다. 나는 몇 년 후 그 밭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백송 씨앗을 파종했다. 주말은 농장에서 사는 농부였다. 이렇게 10년을 기른 백송이 나중에 주 수입원이 되었고, 그때 매입해 두었던 토지들이 LH공사 개발에 수용되면서 박물관의 자금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박물관이라는 문화사업을 생각한 것은 ‘지금은 모두 경제 욕구만을 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동안 굶주렸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멋지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재직 시 퇴직 후의 나의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사업자금 계획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그만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박물관을 세우고 처음 3년은 적자를 기록하여 계속 내가 가진 자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금 전국 대다수의 사립박물관처럼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어 박물관의 순기능을 할 수 없게 될 상황에 처했다. 이때 나는 과감히 수입창출을 위해 박물관의 대변신을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 에이전트 망을 구축하여 그 나라의 명품 컵을 싼값에 수입하여 판매하게 되었고, 컵과 함께 오르골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카페를 만들어 커피, 차, 음료수, 팥빙수 등을 판매하여 수입의 다변화를 시도했고, 최첨단 체험 시스템인 NFC와 AR 증강현실 체험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 컵 만들기 체험과 커피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고, 문화부나 문화재단의 각종 국가사업에 선정되어 수입 창출과 함께 박물관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지금은 사계절 끊임없이 관람객과 학생들이 찾는 박물관의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박물관이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순수익이 연 1억 원을 넘기게 되자 제2의 Fantaseum 사업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현직에 계시는 분들에게 권한다. 적어도 퇴직 후 30년은 이 세상에 살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30년을 보내기에는 그 긴 시간이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은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을 시작하여 대기업으로 키울 정도의 충분한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현직에 있을 때 퇴직 후의 계획을 잘 세우고, 퇴직 후 즉시 그것을 시작한다면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꼭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문인으로 등단할 계획을 세워 도전하면 한국의 유명한 작가까지 될 수 있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10년 이상 정진하여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화가가 되고도 남는 시간이다. 취미를 넘어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는 야심은 육체의 노화를 분명하게 늦추어 줄 것이다. 교직 때의 전공이나 교직과 연관된 것은 새 사업의 걸림돌이 된다. 바로 고정관념 때문이다. 교직 때의 전공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그 분야에서 제2의 인생을 구가하고 보람도 느끼게 될 것이다. 과감한 결단력만 있다면 말이다.
유년기와 방황의 청년기를 제외한다면 인생 90세를 기준으로 퇴직 후 30년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시기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이 시기에 무엇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의 자금력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욕구와, 노련한 경험이 있어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10년 후 또 다른 멋진 나를 위해 재직하고 있는 지금 직장에서 퇴직 후 삶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