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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선물,
잠시 훔쳐온 불꽃에 대한 단상

글.  이관춘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재직

양력이든 음력이든, 설날은 ‘옛날의 불꽃’이 피어나는 명절이다. ‘설’의 어원이 ‘낯설다’란 뜻이라면, 설날은 지난 한 해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낯선 날’이다. 서양에서의 1월은 어떤가. 영어(January)나 독일어(Januar)나 1월은 로마 신화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유래된 것이다. 야누스는 정면에도 얼굴, 뒤통수에도 얼굴이 있는 기이한 신이다.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하는 반면 뒤통수의 얼굴은 지나간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의 설과 같은 분위기는 없지만, 서양의 1월도 새로 시작되는 미래를 응시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시간이다. 최영미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1월인 야누스는 지나간 ‘훔쳐온 불꽃’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앞으로 시작될, 그러나 아직은 불붙지 않은 새로운 ‘불씨’의 시간을 응시하는 때이다. 차이가 있다면 옛날의 불꽃은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지금부터 주어진 시간의 불씨 혹은 불꽃은 신이 우리에게 거저 준 선물이라는 점이다.
새해를 시작하는 낯선 날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앞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과거, 그리고 세월이 흩어간 수많은 삶의 편린들에 대한 회상과 성찰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인지 설이면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사람들은 고향을 찾고 바라본다. 먼저 살다 간 조상들을 찾아 정신적인 유대감을 확인하는 ‘옛날의 시간’이다.
시인에게 ‘잠시 훔쳐온’ 옛날의 불꽃은 무엇일까?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 따뜻했었던’ 그 누군가일까? 너무도 아픈 사랑일 수도, 첫사랑의 날카로운 키스의 추억일 수도 있겠다. 허나 어디 연인만이 불꽃이겠는가? 시를 감상하는 이런 ‘자연적 태도’에서 시선을 돌리면 시인의 ‘불꽃’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옛날의 불꽃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불꽃은 야생의 거친 청춘일 수도, 그래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젊은 날일 수도, 혹은 먹고사는 데만 감성이 꽁꽁 얼어붙었던 흘러간 회한의 세월일 수도 있다.
설날은 ‘옛날의 시간’에 대한 회상이자 ‘옛날의 불꽃’이 되살아나는 날이다. 시인의 가슴에 잠들어 있던 그 ‘불꽃’이 되살아나는 때가 설날이다. 그 불꽃이 무엇이든, 시인은 모든 불꽃은 ‘잠시 훔쳐온 불꽃’이라고 말한다. 돈과 권력, 명예란 불꽃의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몰랐지만, 그 불꽃 때문에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있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에 와 돌아보니 그 불꽃은 ‘잠시 훔쳐온’ 것들이었다. 지난한 삶의 시간들도 억겁의 우주의 시간에 비춰보면 ‘잠시’이며 찰나(刹那)가 아니던가.
사랑의 설렘 때문에, 실연의 아픔 때문에 기나긴 밤을 새웠던 그날들도 시인의 말처럼 ‘잠시 훔쳐온 불꽃’이다. 취업 준비에 결혼 준비에 그리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전전긍긍하며 힘겨웠던 시간들도,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절감했던 똑같은 ‘잠시’의 시간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까지 가는 시간만 상상해 봐도 찰나의 불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세월이 흐르면 그 기억조차 잊힐 불꽃이지만, 그 모두 내게 거저 주어진 시간들이었으니 그저 고마운 일이다. 시인의 말대로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옛날의 불꽃

최영미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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