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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인생 첫 주례의 기억

글.  김해민 창평고등학교 퇴임

결혼은 제2의 인생 출발입니다. 그 중요한 의식을 주재하며 진행하는 사람이 ‘주례’입니다. 주례 선생님 하면 거의 백발이 성성하거나 나이가 지긋한 분이 연상되는데 검은 머리의 사오십 대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주례자라고 결혼식장 중앙에 서 있다면 하객들의 느낌은 어떨까요. 주례자보다는 결혼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겠지만, 그래도 주례를 맡게 된 사람은 긴장을 많이 하겠지요.
어느 날 오후, 교무실에 멋진 제복을 입은 젊은 장교가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는 저에게 다가와 거수경례를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담당한 학급의 학생이었으며, 지도교사로 있던 기타연주반 멤버였고, 학업능력도 상위권이었던 좋은 인성의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〇〇사관학교로 진학하였던 이 학생을 생도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중위 계급장을 달고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선생님, 저 결혼하게 되면 주례를 서 주세요!”라고 했고 그때 내 나이가 막 오십 살이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아직 젊은이야!” 하고 웃어넘기며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대위 계급장을 달고 나타난 어느 날에도 결혼하게 되면 꼭 주례를 서달라는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나이도 나이지만 교장도 아닌 ‘부장교사’라서 사회적 명성도 없으니, 훌륭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좋은 분에게 부탁하라고 거절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제자로부터 결혼하게 되었는데 주례를 맡아달라는 부탁의 전화를 다시 받았습니다. ‘삼고초려’라고 할까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더는 거절할 수 없어 수락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십 대 중반도 되지 않은 나이에 결혼식 주례를 맡아 청춘남녀의 새로운 인생 출발을 주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하객들이 함께 축하하며 웃어주고 주례의 언행에 집중하는 그런 상큼한 주례사를 하고 싶었기에 결혼식장을 일부러 찾아가 주례자의 행동과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메모하기도 하고, 예식장 관리자에게 결혼식 순서에 대해서 특별한 사항이 있나를 알아보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신부의 직업도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소수 인원만 선발한다는 □□사관학교 출신 대위였습니다. 서로 다른 군의 남녀 장교가 모 교육장에서 장교 교육 중 운명적으로 만나 천생연분으로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혼식 날, 사회자가 주례를 ‘신랑의 고등학교 은사님’이라고 소개하였고, 무게감이 없어 하객들이 수군거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단상으로 향했는데 인생의 가장 신성한 의식 중 하나인 결혼식을 주관하는 주례에 대한 하객들의 인정 본능이 발동되어서 그런 걸까요, 모두 조용하고 진지하게 박수로 맞아주었습니다. 신랑인 제자도 주례를 모시면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했을 것이고 신부와 의논도 하였을 것이며, 그런 후에 최종적으로 저에게 부탁하였을 것이니 당당하게 결혼식을 이끌어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내용을 엮어가며 계획한 대로 하객들을 웃게도 하고 박수도 유도하면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을 하면서 주례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요즘 주례자 없이 치르는 결혼식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여서 다시 주례를 맡게 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아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이끌었던 그 일은 저의 삶에서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첫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제자의 가정에 항상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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