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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지 이팝나무

글.  우정렬 혜광고등학교 퇴임

이팝나무로 소문난 밀양 위양지에 갔다. 어린이날 연휴지만 자녀와 손주가 서울에 있어 만날 수가 없다. 미리 페이스톡으로 손주들과 통화하고 선물도 택배로 보냈다. 날씨도 화창하고 연휴가 이어져 많은 인파로 붐볐다. 위양지에 이팝나무가 활짝 피어 찾아온 상춘객들 표정도 꽃처럼 밝고 환하다.

싱그러운 푸르름이 절정인 신록의 계절 5월은 초록빛 식물들이 온누리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5월의 여왕 장미와 더불어 이팝나무도 이 시기에 가장 예쁘게 피어 행락객들의 눈길을 끈다. 나무는 새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을 가지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고 있다.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처럼 생겼다. 이들이 모여 이룬 꽃 모양은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흰 사기 밥그릇을 연상시킨다. 이팝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시원하게 큰 키도 아니고, 플라타너스처럼 넓은 잎을 가진 것도 아니다. 나무껍질도 매끈하지 않지만, 하얀 꽃이 필 때면 존재감이 다른 나무를 압도한다.

이팝나무에 얽힌 유래도 다양하다. 명칭부터 쌀(밥)나무, 이밥나무, 입하나무, 이암나무, 뼛나무 등 여러 가지다. 조선왕조에 이(李) 씨인 임금이 내려야 먹을 수 있는 이 씨의 밥이라 하여 이밥나무다. 당시 배고픔과 흰 쌀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아 붙인 이름 같다. 피는 시기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에 왕성해 입하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하얀 고봉밥이 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연상하면 쌀나무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게 가장 유력하다. 한 해 풍년을 점쳐 주는 나무로도 상징된다. 꽃이 피는 모양새를 보고 풍년인지 흉년인지 점쳤다고도 전해 온다.

효(孝)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옛날 경상도 어느 고을에 착한 나무꾼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모친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 눈도 희미하고 식사도 잘하지 못했다. 어느 해 5월 초 아들에게 “얘야, 흰 쌀밥을 먹고 싶구나”라고 했다. 아들은 밥을 먹겠다는 말에 너무 기쁘고 반가워 얼른 밥을 지어 드리려고 부엌으로 나왔다. 하지만 쌀독에는 쌀이 조금 밖에 없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마당에 있는 나무의 흰 꽃을 듬뿍 따다 자기 밥그릇에 담아 들고 들어갔다. 장기간 병석에 누워 있던 모친은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흰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 모습에 아들이 너무 기뻐 큰소리로 웃자 어머니도 덩달아 웃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임금이 가난한 집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리자 걸음을 멈추고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라 했다. 신하에게서 웃음소리의 연유를 알게 된 임금은 감동하여 그 나무꾼에게 큰 상을 내렸다.

밀양시 부북면에 위치한 밀양 8경의 하나인 위양지는 연못도 아름답지만 완재정을 에워싼 이팝나무 꽃이 눈처럼 피는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입구부터 들어서면 푸릇푸릇 숲속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연못 주위에 새하얗게 피어난 이팝나무가 아니었더라면 숱한 인파들이 찾아 들었을까. 위양지는 신라~고려 시대에 축조되어 기록상으로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34년 이유달 부사가 수축했다고 전해 온다, 완재정은 당대 선비와 문인들이 사시사철 찾아 즐겼던 곳으로, 안동 권씨 학산 권삼변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해 어느 선계인 듯하다. 저수지 수면 아래에 투영된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처럼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이 위양못에 잔잔하게 내려앉아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완재정은 절정을 이룬다.

장미와 이팝나무는 5월의 꽃이다. 장미는 화려하고 열정적이며 이팝나무는 수수하고 고요하며 순수하게만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꽃이 질 때 바닥에 하얗고 아름다운 그늘을 만들고는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질 이팝나무를 생각하면 아쉽다. 내년을 기약하며 마음을 달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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