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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만큼 성숙한다

글.  안종진 인천포스코고등학교 퇴임

내 방에는 결혼하면서 맞춘 책상과 서랍 속 온갖 물건들, 책장의 책들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다. 버려야 할 물건이 대부분이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특히 책상은 40년 동안 나와 함께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결혼하면서 아내가 가져온 1호 혼수품으로 양쪽에 서랍이 3개씩 달린, 특별히 제작한 책상이었다. 나에게 책상은 원하는 공부를 더 하여 교직에서 벗어나기 위한 친구였다.
아내는 이사할 때마다 부피가 너무 크고 투박스럽고 상처투성이인 책상을 버리고 실용성과 볼품이 있는 책상으로 바꾸자고 성화였지만, 나는 내 영혼이 함께 숨 쉬는 책상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책상은 강원도 정선에서 사북으로 광양을 거쳐 인천까지 함께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간직한 보물이다. 책상은 40년 동안 세월을 견디면서 연륜의 흔적을 남겼다. 나는 책상의 그 연륜을 사랑한다. 책상은 끝까지 나랑 함께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책장 4개에는 수십 년 동안 수집한 신문 스크랩과 자료집 100여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던 자료는 앞으로도 펼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책장을 비워야겠다. 자료를 버려야 하는데 하면서 버리지 못함은 연민의 정일 것이다. 이제 과감하게 버려야겠다. 재활용 장으로 보내서 재탄생의 기회를 주어야겠다.
내 주변을 정리해 야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 손을 펴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 마음을 비워야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우지 않고 채우기에만 급급하다가 사라져간다. 불가에서 출가하려면 속세에서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번뇌에서 탈출할 수 있다.
영문학 교수로 정년을 한 친구가 책장에 있던 연구논문과 책을 불쏘시개로 며칠을 태웠다고 했다. 버리기는 몸과 마음을 채우는 수행이다. 수년 동안 입지 않고 보관된 옷, 신발장 신들도 새 주인을 찾도록 해야겠다. 오늘부터 당장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겠다. 버리기를 통해서 몸과 마음을 정화해야겠다. 비운 만큼 성숙한다. 가장 아름다운 비움은 마음의 평화를 위한 욕심을 비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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