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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일주일 살기’에서
길어 올린 생수

글.  최춘애   숭신여자중학교 퇴임

내 나이 스무 살에 동갑인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는 ‘착함, 성실함’이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 강원도 남자다. 나는 서울에서만 살았기에 시골이 궁금했고 그의 행동도 나와 많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시댁 식구들도 모두 같은 표식을 달고 계셨다. ‘착함, 성실함!’
40년의 결혼 생활 동안 연세 많으신 시부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로 생각될 정도로 며느리 사랑이 남다르셨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 어릴 때 10여 년을 방학마다 거의 한 달씩 강릉에 내려가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남편은 방학이 없는 일반 회사원이니 혼자 집에 남고, 두 아들과 나는 정 많고 지혜로우신 시댁 어르신들 덕분에 행복했다.
남편은 친정 부모님을 17년간 모시고 살다가 작년 한 해에 두 분 다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우리는 10년 전에 시부모님도 돌아가셨고 아이들도 잘 살아가고 있으니 며칠이라도 조용한 곳에 가서 쉬다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강진 일주일 살기에 대해 들었다. 그때 나는 왜 손위 시누들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괜찮겠냐고 했지만, 나는 형님들과 함께 쉬겠다면서 한 분 한 분 전화했고 세 분 다 너무 좋아하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5월 31일부터 6월 6일까지 평생 남을 멋진 강진 여행의 닻을 올렸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동해만 봐왔는데 이번에 남해 완전정복! 나도 시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에 강릉 시댁만 가서 남해에 간 적이 없어 더욱 설레었다.
사 남매는 동해와 다른 남해의 다도해와 파도 없는 바다를 보며 신기하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밭이 없고 죄다 논이며 더구나 2모작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길에는 나뭇잎이 참기름으로 씻은 듯 반질반질해서 손가락으로 쓱 문질러 보니 먼지 하나가 없다. 주로 양식을 해서 바다 냄새가 역하지 않고 햇볕은 쨍한데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세 형님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관광만 다녔지,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고 내게 감사함을 표하셨다.
장흥의 우드랜드에서 본 편백 숲과 완도의 명사십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명사십리는 다음 날에 또 갔다. 우리는 강진 영랑 생가, 사의재 연극, 남미륵사, 병영성, 하멜기념관, 정남진 타워, 장흥 우드랜드, 완도 명사십리, 이순신과 장보고 기념관, 노화도, 보길도, 가우도, 청자박물관, 청자문양 새기기 체험, 백련사, 다산초당과 박물관, 무위사, 백운도원림, 강진다원 녹차밭을 보고 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세 형님이 산과 바다에 마지막까지 흠뻑 취할 수 있도록 목포 북항에 들려 고하도까지 갔다가 유달산에 들려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이후 천안으로, 춘천으로, 강릉으로 세 형님을 귀가시켜 드렸다.
늘 선하신 세 형님은 시부모님이 떠나신 내 마음의 빈자리에 둥지를 트셨다. 80세, 77세, 74세이신 세 형님의 지혜, 사랑, 인정이 작년에 별세하신 친정 부모님 대신 나를 감싸 안아 주시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 그렇게 강진 일주일 살기는 목마른 이가 생수를 마시듯 하하호호 웃으며 마칠 수 있었다.

형님들, 여름을 알리는 더위 속에서
달고 맛있는 생수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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