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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웃

글.  이영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재직

오늘도 수많은 환자를 만난다. 그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많은 물음으로 내게 다가온다. 많은 답변을 그들에게 전한다. 그들의 표정은 내게 어려움 없이 읽혀진다. 이곳에서의 그들은 가면이 없다. 안도감, 불안감, 기대감, 절망감이 너무나 또렷하다. 이곳에 와서 자신을 살펴 주기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원어브뎀(One of them)이 아닌 익셉셔널(Exceptional)한 존재로 살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다. 어떤 이는 도도함으로, 어떤 이는 겸손함으로 그 간절함을 표현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연과 배경이 있다.

의료인들은 전문가 집단이다. 전문성을 위하여 수많은 사연과 배경은 의도적으로 배격해야 한다. 우리 앞의 그들은 사연과 배경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손에 자신을 맡겨야만 하는 자연인이다. 우리는 그렇게 접근할 때 그들을 살필 수 있다. 그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하고, 균형 잡힌 치료 과정이 있어야 한다. 사연과 배경을 살피는 것은 이러한 일에 방해가 된다.

나는 간호사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간호사로 살아왔다. 나의 간호사 생활의 7할 이상이 중환자실에서 보낸 기간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과 함께 지낸 시간을 반추해 본다. 베드에 누워있는 그들은 각자의 사연과 배경을 배격당한 채 오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자연인들이다. 그러나 그들 각자의 사연과 배경은 곧 그 존재다. 이것을 어찌 살피지 않을 수 있을까….

간호사로 살며 마주한 상황들은 이러한 역설이 가득하다. 너무나 비인간적인 중환자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너무나 선한 배경의 중환자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들은 내게 간호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여전히 마음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간호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환자의 질병을 살펴야 한다. 간호사는 감성적이어야 한다. 환자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오늘도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다가오는 환자와 보호자가 내 앞에 있다. 그들은 나의 이웃이다. 나 또한 몇 해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을 때 저들과 똑같이 타인에게 맡겨진 자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옆에 좋은 이웃이 있었다.

어려움과 피곤함 가운데 오늘도 난, 저들의 좋은 이웃이 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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