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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변
교사라는 일을 마치며

글.  천영기 대동고등학교 퇴임

안녕들 하십니까?
이제는 그리움으로 안녕을 묻겠습니다.
놀라운 직진의 방향성을 가진 시간 속에,
그동안 낡은 배낭에 주제도 모르게 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봅니다.
꼰대의 첫 번째 제언
거기엔 후회, 절망, 좌절, 두려움, 분노… 회한 등의 파편이 조각처럼 남아 있기에 그럭저럭(?)과 치열(?)의 삶으로 여기면서 덜어내고 있습니다. 다만 상큼하다, 싱그럽다, 깨끗하다, 흐뭇하다, 신선하다, 후련하다, 아늑하다, 기쁘다, 그리하여 행복하고 따뜻하다는 단어는 바래지는 연기처럼 푸석한 먼지로만 남아 있네요. 결국은 지금까지, 오늘도 무사히… 무사히… 했더니, 무사하기만 하면서 터벅터벅 걸어왔네요. 부디 행복하고 따뜻한 언어들을 가슴에 많이 담으시길.
꼰대의 두 번째 제언
삶에는, 교육에는, 선생에게는 문제만 있고 정답은 없습니다. ‘사람은 바꿀 수 있는가?(고쳐 쓸 수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도발적이지만 본질적인 질문이겠지요. 저마다의 삶에 따른 답변(자신도 사람입니다)만이 있을 뿐입니다. 부디 잘 사색하시고 걸어가시길. 단, 공동체의 올바름만은 잊지 마시길. 선생이란 무게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사랑하는 새끼들이 이 사회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완숙한 의무와 책임만은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말입니다.
꼰대의 세 번째 제언
우리의 삶은 늘 앞만 보고 계속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앞만 보고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초췌하고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과 어쩌면 힘없이 추레하고도 쓸쓸한 뒷모습도 올곧게 보시길. 그게 홀로, 혹은 혼자서는 힘들지요. 그럴 때 나의 얼굴과 뒷모습을 봐줄 수 있는 벗은, 요즘 표현으로 ‘우아한 벗’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라고 나지막하게 말할 수 있는……. 하여 이 길이 장대하거나 엄숙하거나 보람이라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리 쓸쓸하지도 허무하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라는 단어의 분명한 뜻을 마음에 둘 수 있기를.
이제 저는 낡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새롭지만, 끝자락의 낙일(落日)의 시간을 담아 보려 합니다. 적어도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운 황혼 길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누추하거나 비루하지는 않아야겠지요. 가끔 삼겹살 불판 위로 기름진 연기가 술잔에 피어나는, 혹은 먹장구름이 비가 되어 소나기로 퍼붓는, 혹은 달빛이 고와 눈부시게 부서지는 물소리가 아름다운 날에, 행여 그리움으로 그대들의 현재 모습에 안부를 묻더라도 부디 나무라지 마시고 기억으로나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답니다. 수많은 사람은 그냥 하루하루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역사의 진보에 희망과 후퇴의 절망을 가끔 느끼지만,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하면서 살아간답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이랍니다.
내내 안녕히들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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