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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드(YOLD)

글.  정선숙  일성여자고등학교 퇴임

자리 양보는 아무리 생각해도 반갑지 않고 아직은 싫었다.
오늘 문학 지인들을 만나고 종로에서 지하철을 탔다.
탑승객이 많아서 서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은 젊은 여성이 일어나 앉으라고 한다.
괜찮다고 해도 바로 내린다며 일어난다.
자리 양보는 받아본 적이 없어 당황도 되고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하는 생각에 그 자리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뜨악한 표정으로 앉아서 가는데 얼마 전의 일이 생각난다.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 가고 있었다. 한 정거장쯤 가다 보니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듯한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탄다. 그다지 연로한 것 같지 않아 나도 휴대폰을 보며 그냥 앉아 있었다. 그때 부부 중 여자가 내 앞으로 오더니 자기 남편이 앉아야 하니 일어나라고 한다. 보통 남편이 아내를 챙기는데 여자가 남편을 앉혀야 한다고 해서 아픈 사람인가 하고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여자의 행동은 예의가 없어 보였지만 나를 젊게 봐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니, 자리를 내주고 서서 가면서도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게 되면 보통 빈 자리가 있나 찾게 된다. 그런데 그 찾게 되는 자리임에도 내어주는 자리보다 내놓으라는 소리가 더 반가우니 묘한 마음이다. ‘젊은 노인들’ 마음이 다 그렇지 싶다.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었고 연금제도도 있어 옛날과 달리 노인들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 많다. 특히 젊은 노인들은 이전 세대보다 교육 수준도 높고 스마트폰과 컴퓨터 활용 능력도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시간도 여유가 있다 보니 각종 취미 생활을 하며 외부 활동도 활발하다. 또한 마음도 젊어 젊은 스타일을 추구하며 외모도 예전과 다르게 젊다. 요즘 이 젊은 노인을 욜드(YOLD)라 지칭한다.
Young Old의 줄임말인 욜드(YOLD)는, 지식백과사전에 1946~1964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도하는 젊은 노인층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또 이 세대는 건강하고 부유하며 그 규모가 커 은퇴 후에도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 노인들의 생활 모습은 예전 노인들의 모습과 다르다. 가족을 위한 소비를 주로 해왔던 중년들이 젊은 노인이 되어 자신의 생활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며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업계도 나이의 경계가 사라진 에이지리스(Ageless)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언젠가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 ‘제2의 청춘카’를 보니, 무엇인가를 인터넷을 통해 예매하고 친구들이 모여 신나게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클로즈업된 화면은 젊은이들이 아니고 젊은 노인들이다. 젊은 노인들의 일상이 반영된 광고이다.
올해 여든이 된 큰언니와 모처럼 안부 통화를 했다. ‘80세의 벽’이라며 80세가 되면서 우울해서 힘들었는데 마음을 다스리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몇 달을 보내다 보니 이제 여든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너무 친절하게 대하니까 그것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싫다며 내가 뭐 그리 노인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내 나이를 젊게 인식할수록 건강 상태, 인지 기능, 우울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다행한 일이다.
노인은 더 이상 궁상스럽거나 슬픈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이 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다. 마음만큼 젊게 살려면 거기에 건강이 따라야 하니 적당한 운동, 정기적인 건강 검진은 필수이다. 연장자라고 대우받기만 바라지 말고 너그러움, 감사하는 마음 자세도 중요하다. 신체적 기능이 떨어진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잘 관리하며 연장자답게 당당하자.

젊은 노인은 잘 익은 과일 같고 가을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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