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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이야기

글.  유일기 전주사범대 부설고등학교 퇴임

甲辰年(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甲辰年(갑진년) 푸른용의 해에 福(복) 많이 받으시고 더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집은 섣달그믐날 저녁에 늘 있는 일상입니다. 저녁 식사 후에 과일과 간단한 음료를 준비해서 온 식구들이 좁은 방에 둘러앉아 아버지께서 우리 집의 유래와 덕담을 해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는 유과와 콩강정, 깨강정, 콩과자와 냉장고가 없어도 밖에 놓은 시원한 식혜를 내놓았습니다. 함께 홍시도 곁들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시는 우리 집 내력과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어릴 적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성묘를 다니면서 사촌들이나 조카들한테 우리 몇 대 되시는 ‘선조님 산소’라고 아버지처럼 전합니다. 바르고 건강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라는 말씀까지 덧붙여서 마무리합니다. 집안 유래와 덕담 다음에는 자식들이 준비한 복돈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신권으로 교환해드린 빳빳한 새 돈으로 자식, 며느리, 손주, 손부, 증손주 순으로 복돈을 주십니다. 올 설 명절은 단출했습니다. 그렇게 북적이고 소란스럽던 명절이었는데, 때가 때인지라 저희 삼형제만 모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추석과 설을 코로나19 속에서 보내다 보니 이젠 이렇게 되나보다 싶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코로나19가 명절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사람이 설 명절 연휴를 제주도에는 즐긴다고 합니다. 젊은이 입장에서 고향을 찾고 성묘하는 길이 즐겁기만 했겠습니까? ‘며느리들은 왜 명절 때마다 꼭 시댁에서 지내야 하느냐?’, ‘명절 때는 손목에 깁스를 해야 한다’, ‘추석에는 친정으로 설에는 시댁으로 나누어 다니자’라는 여자들의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린아이들 데리고 시골에 와서 물갈이로 고생하기도 하고, 잠자리가 바뀌니까 밤새 보채는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평소에 비웠던 사랑채에 방마다 불을 지피고, 이부자리를 깔아 놓아도 시골 찬 공기는 어린아이들에게 감기를 안겨 주곤 했습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모이면 집이 좁아서 바로 앞집에 방 세 개를 게스트하우스같이 빌려 전기 패널을 깔아 놓고 방을 만들었습니다. 창문에 커튼을 달아도 빈집이라 바닥은 금방 뜨거워지는데 방 안 공기는 차갑습니다. 흙집이지만 오래 비워 둔 집이라 온화한 공기가 없습니다. 이렇게 몇 차례 설 명절을 보내다 보니 앞으론 이렇게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고향 마을에 차가 골목마다 빽빽하게 주차되곤 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오가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명절 지내느냐고 몇 시간씩 고생해서 꼭 다녀가야 할까?’, ‘그냥 평소에 시간 내서 성묘도 하고 인사도 하고 다녀가는 것이 옳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식구들 모임도 적당한 날을 잡아서 모이는 것이 한가롭고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덕담과 복돈을 주시고 나면 양말을 나누어 주십니다. 매번 시장에서 비닐에 싸인 양말을 식구들 숫자대로 준비하십니다. 평생을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며 미리 준비하셨다가 일일이 선물해 주십니다. 남자들은 까만색 양말, 여자들은 깨끗한 양말로요. 새해 첫날에 새 양말을 신고 무병장수하라는 마음으로 주십니다. 새 양말을 신고 세배도 드리고 차례도 모시고 성묘를 다녀옵니다.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양말은 시장에서 구입한 나이론 양말이 대부분이셨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검정색 나이론 양말 신습니까? 저희 두 아들도 성묘 다녀온 다음 저희집에 와서는 그냥 벗어주고 갑니다. 올 설에도 역시 아들들과 며느리, 손주들과 손주며느리 숫자에 맞춰서 양말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20켤레 이상을 준비하십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오지 못한 손주들과 손부들이 많아서 남은 양말을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서랍 속에 넣으시더군요. 다음 설에 자식들 다 모이기를 바라시겠지요. 몇 년 전 설같이 다 모이지 못해서 아버지께서 조금은 서운해하시는 느낌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내년 설에도 내후년 설에도 오래오래 양말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풍성했던 설 명절이 조금은 썰렁하다고 할까요? 이런 분위가 몇 년 후에는 낯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년 명절 끝에는 이혼율이 줄었다는 뉴스가 있네요. 제사상과 차례상 제수 음식을 차리고, 그렇게 많이 모이는 식구들 먹거리 준비가 얼마나 힘듭니까? 저도 자식들한테 제사와 차례를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 시대가 바뀌고 너나 나나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많은 식구가 모여서 북적대던 명절이었는데 아쉬움은 많습니다. 이웃 어른들께 세배하러 다녔던 풍습이 사라졌습니다. 한때는 고향에서 마을회관에 어르신들 모시고 공동세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득한 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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