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삶의 높이 문학의 향기

백록담, 안녕?

글.  정지혜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 재직

안녕하세요.
우연히 사학연금 독자 마당을 알게 되었고, 쑥스럽지만 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남편과 저는 8년간의 오랜 연애 후 결혼하였고, 올해로 결혼 7년 차가 된 부부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저를 꼭 닮은 아기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신이 되지 않아 꽤 긴 시간 동안 직장을 다니며 난임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4년여 시간 동안 시험관시술 실패가 반복되었고, 제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결국 작년에는 몸에 이상이 생겼고 제 건강을 생각하여 고민 끝에 잠시 쉬어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장에 ‘난임 휴직’이라는 복지제도가 있어 잠시 일을 쉬면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시험관 시술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부서에서 제 사정을 잘 이해해 주신 덕분에 다행히 난임 휴직을 사용하게 되었고, 몇 달간 급여를 받지 못할 것을 고려하여 사학연금 대여제도를 통해 미리 생활비도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이렇게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휴직을 한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금전적 대비도 되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었습니다. 난임병원에 진료가 없는 날에는 지친 마음을 달래려 남편, 가족들과 함께 국내 이곳저곳으로 예쁘고 아름다운 경치들을 보러 다니면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난임 휴직에 들어간 후 본격적인 진료 일정이 시작되기 전, 오랜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좋은 정기를 받아 꼭 임신에 성공하라며 한라산 등반 일정을 잡아 둔 친구들 덕분에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날씨 운이 따라줘서 맑은 하늘 아래의 백록담까지 보고 왔습니다.
‘아기’라는 간절한 꿈이 있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름답고 멋진 것을 볼 때마다 소원을 비는 버릇이 생겼었습니다. 힘든 등산 끝에 운 좋게 마주했던 백록담을 바라보며 어김없이 또 빌었습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아기천사를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그리고 행운처럼 백록담을 보았던 그날, 그곳에 산신령님이 놀러 오셨다가 제 소원을 들으셨던 걸까요? 감사하게도 올해 아기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난임 휴직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시도했던 시험관 시술이 착상에 성공하였고, 지금은 19주 된 아기가 제 배 속에서 힘차게 발차기하고 있답니다.
태명은 ‘록담이’입니다. ‘백씨 성’의 ‘록담’이라고 ‘백록담’이랍니다. 이 글을 쓰며 바라본 창밖의 맑은 밤하늘에 별들이 멋들어지게 수 놓여 있습니다. 환하게 반짝이고 있는 예쁜 별들이 제 기도를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다시 두 손을 모아봅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예비부모들에게 예쁜 아기천사가 빨리 찾아와주기를…! 모든 난임부부들의 간절한 꿈이 이루어져서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기쁨을 많은 부부들이 함께 만끽할 수 있기를…!’
록담이는 친정, 시댁 통틀어 첫 손주라 가족 모두 간절히 바라던 아기랍니다. 벌써 우리에게 큰 행복을 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훗날 아기가 크면 가족들이 너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정말 아주 오랫동안 너를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노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엄마가 배속의 아가에게 보내는 편지

아가야, 안녕? 엄마야~

아가야, 네가 찾아온 걸 알게 된 후 많은 사람이 기뻐했단다.
네 할머니는 네게 줄 꼬까옷을 뜨려고 창고에 있던 뜨개질바늘을 30년 만에 꺼내셨고, 네 할아버지는 네가 맘껏 뛰놀며 어떤 씨앗이든 심어볼 수 있는 텃밭을 마당 한편에 마련하셨단다.
네 외할머니는 네게 줄 쿠키를 구우려 낡은 오븐을 바꾸고 귀여운 빵틀을 모으시고, 네 외할아버지는 너와 함께 야구경기를 보러 다닐 생각에 네게 입힐 작은 유니폼들을 벌써 사두셨단다.
아직 엄마 배 속이지만 열심히 커가고 있는 너의 모습에 감격했는지 사랑이 많은 네 이모는 초음파 사진을 보곤 울어버리고, 무뚝뚝한 네 삼촌도 쑥스러운 표정이지만, '쑥쑥 자라라'라며 네 사진에 기도를 해주었단다.
엄마랑 아빠는 매일 밤 너와 함께할 날들을 상상하며 잠에 들고 있어.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을 때 꼭 불러야 하는 두꺼비집 노래를 가르쳐줄게. 밤하늘 보름달이 뜨면 달나라에서 절구를 찧는 동물친구의 비밀을 알려줄게.
내년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우리 아가도 함께 보자. 따뜻한 담요에 폴폴 감싸서 포근한 아빠 품에 안겨 엄마 손 꼭 잡고 예쁜 밤하늘을 바라보자.
엄마 아빠는 지금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야.
아가야,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앞으로도 많이 사랑해~

  • 의견 보내기
    EVENT

    바로가기
  • 문장 퍼즐 퀴즈
    EVENT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