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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학생

글.  이신규

영미가 가출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정 문제로 인해 가출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심각한 가정 문제로 인해 학교를 중도 포기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순간적인 충동으로 인한 가출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고등학교 3학년 때 검정고시로 졸업하려는 마음에 가출했다가 3일 만에 독서실에서 아버지에게 잡혀 온 경험이 있다. 이처럼 충동적인 가출은 대개 스스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담임선생님 입장에서 아이들을 그저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이다. 한 번 있었던 가출의 경험으로 지난 몇 년 동안 10번 이상은 가출한 학생들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이러한 상황들이 하나님의 교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반에 가출한 학생이 생길 때마다 사명감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나의 경험처럼 대부분 학생들은 어떤 흔적을 남기곤 한다. 친한 친구에게만 비밀로 말하거나, 평소 자주 가던 곳을 찾아가거나, 오락실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친한 친구를 잘 설득하면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미의 경우는 달랐다. 이 추운 겨울에 영미는 친한 친구도 없었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영미의 갑작스러운 가출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영미를 찾기 위한 단서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영미를 찾는 과정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심지어 퇴근 후까지도 포함해 매일 10번이 넘게 승용차로 시내를 무작정 돌았다.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3일째 되던 날 길거리에서 영미를 발견했다.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달려가는 순간, 영미가 나를 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주변 시민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아이가 도망가고, 젊은 남자가 그녀를 쫓는 모습이 선생님이 가출한 학생을 찾아가는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결국 영미를 붙잡았고 영미네 집 근처로 향했다. 차 안에서 그녀를 엄청나게 혼냈다. 영미의 집은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집에 데려다주기 전에 바닷가 근처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한 시간가량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어둡고 추운 겨울 저녁, 바다를 향해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영미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전조등을 켜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조등 빛에 반사되어 차 앞 유리로 달려오는 눈송이들이 마치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몰려오는 듯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가출한 학생을 혼내고 있었지만, 아름답게 내리던 함박눈으로 인해 분위기가 낭만적으로 바뀌었다. 대화를 마치고 집에 데려다준 후, 영미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잘 다니기 시작했고, 졸업 후 대학에도 진학했다. 20년이 지난 이야기인데도 오늘처럼 출근길에 눈이 내리고 승용차의 앞 유리에 부딪히면 영미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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