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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1시 22분,
연금이 들어왔다

글.  김광희 여수공업고등학교 퇴임

나는 27년 동안 17일이 월급날이었다.
휴일과 겹치는 날엔 2~3일 정도 이르게 입금됐다. 자동이체일을 월급날에 맞춰 18일 이후로 설정했다. 이체일이 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월급통장에서 돈이 쏙쏙 빠져나갔다. 퇴직과 동시에 17일 월급도 끝났는데 난 생각을 못 했다. 가스 요금, 운전자 보험 미납이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머리가 번쩍였다. 월급통장을 확인했다. ‘아뿔싸!’ 잔액이 두 자릿수다.
먼저 퇴직한 선생님들이 퇴직 전 지출 정리를 하라고 했다. 난 퇴직 전 꼼꼼하게 ‘지출 내역을 엑셀로 정리해야지’ 했는데 잊었다. ‘혼자 사는데 무슨 정리까지. 일단 써보고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미루다 잊은 거다.
직장인으로 마지막 월급인 2월 입금액이 통장에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미납이라는 문자가 겨울바람처럼 내 머릿속을 때렸다. 난 핸드폰을 열어 은행에 접속했다. 지출 내용을 살폈다. ‘도대체 어디에 돈을 썼을까? 과하게 먹은 것도 물건을 산 것도 없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즐겨 먹던 ‘소떡소떡’을 먹듯 날마다 기분 좋은 지출을 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더니 내가 그 말의 모델이 된 거다.
통장 잔액을 본 후 마음이 심란했다. 과소비도 아닌데 과소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렸다. 핸드폰 알림이 들렸다. 통장 알림을 설정해 뒀는데 입금을 알리는 소리다. 이 시간에 입금이라니. 놀란 난 핸드폰 문자를 확인했다. 1시 22분, ‘사학 연금 급여’라고 찍혀있다. ‘아! 오늘이 25일이구나.’ 퇴직 후 첫 연금일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27년 근무 후 받는 금액이 날 허전하게 했다. 이젠 성과금, 보너스, 복지비가 없다. 오로지 연금으로만 살아야 한다.
지출 내용을 엑셀로 정리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노트 한 페이지에 적었다. 보험금 지출이 가장 컸다. 남편 사망 후 난 가장 먼저 보험 가입을 했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남을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진 후 가입해야 했었는데 무작정 가입한 게 문제였다. 매달 나가는 보험금이 월급의 40%까지 된 적도 있다. 그때 손해를 보면서 해약했던 건 그나마 잘한 일이다. 퇴직하고 점점 늙어갈 난 지금 가지고 있는 보험은 유지해야 한다.
지출 내용을 엑셀로 정리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노트 한 페이지에 적었다. 보험금 지출이 가장 컸다. 남편 사망 후 난 가장 먼저 보험 가입을 했다.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남을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따진 후 가입해야 했었는데 무작정 가입한 게 문제였다. 매달 나가는 보험금이 월급의 40%까지 된 적도 있다. 그때 손해를 보면서 해약했던 건 그나마 잘한 일이다. 퇴직하고 점점 늙어갈 난 지금 가지고 있는 보험은 유지해야 한다.
난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을 뺀 잔액을 확인했다. 훈풍에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이 심란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충분하지 않아도 살만하다. 카페 나들이, 책 구매, 영화 보기, 자동차 기름 채우기, 친구 만나 맛있는 거 먹고 놀기 등. 넘치는 시간을 미치도록 하고 싶었던 것들로 채울 수 있다.
부드러워진 마음을 쓰다듬다 문득 냉동실에 있는 ‘누가바’가 생각났다. 내가 맥주 마신 후 즐기는 ‘누가바, 비비빅, 바밤바’가 냉동실에 꽉 차 있다. 며칠 전 엄마가 보고 싶다며 온 딸아이가 가득 채워놓고 간 것이다. 난 새벽 2시 조금 넘은 시간에 냉동실 문을 열고 딸아이의 사랑인 ‘누가바’ 2개를 먹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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